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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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에 휙휙 잘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인상깊게 잘 표현했다고 느낀 부분은 고복희와 장영수의 러브라인이나, 자신들만이 옳다는 생각에 빠져 여러 방식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고복희 대학시절 운동권 사람들과, 프놈펜의 김인석 사장 등)을 그린 부분이었다.

박지우의 입을 통해 표현되는 요즘 20대의 답답한 마음에는 공감이 되었고, BL을 읽는 학생의 심리를 쓴 부분도 이해하기 쉬워서 좋았다.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는데, 일단은 인물들에게 특정한 성격을 부여한 후 그들 각각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짧은 분량 속에서 긴 시대를 망라하며 여러 인물을 다 그려내려고 했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주인공 고복희와 박지우만 보아도 그 성격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비현실적인 느낌이 있다. 장영수도 비운의 왕자처럼 그려지고, 린, 안대용, 김인석, 이영식이 갖는 역할도 하이틴 로맨스 영화에 나오는 각종 조연들의 그것과 같아서 아쉬웠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이영식처럼 유능한 캐릭터를 만든 후에 그를 갈등해소 과정에서 아무런 계기도 없이 그저 도구적으로 소모해버렸다는 게 안타까웠다. 능력이 강조되던 모습의 캐릭터였는데 소설을 빨리 마무리짓기 위해 그저 목사라는 직업의 도덕성을 끌어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긴 시대의 많은 사건들을 한번에 집약해보려고 하는 데에서 오는 어색함도 있었다. 고복희의 모친인 강금자가 겪었던 산업화 시대 여공들의 설움과, 그러한 강금자 세대의 한을 대신 풀고자 대학에 갔지만 운동권의 폭력성에 부딪힌 고복희의 상처, 새만금 간척 반대 운동을 하다 죽은 정의로운 장영수의 아픔,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보고자 했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 자살하고만 최사장 등... 사실 전체적으로 소설을 읽고 나서 드는 느낌은 하이틴 로맨스 영화를 활자화한 것 같다는 느낌인데, 이렇게 시대적인 내용을 다 넣으려고 하다보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영화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합친 것 같아 보인다.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소설의 방향성을 어느 쪽으로든 하나 정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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