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한국 장르소설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매일 매일 즐겁에 장편소설을 읽던 때가 있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제대로 페이지터너 스타일의 소설을 못 찾았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 "수정호수의 마녀"은 간만에 찾은 마른 땅에 비 내리듯 발견한 판타지소설입니다. 수정호수의마녀는 판타지소설 답게 잘 설계된 판타지 세계관을 기반으로 주인공인 왕녀 일라와 그 주변의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성장스토리가 매력적이고 흥미롭습니다. 우선 세계관에 대해 간략이 설명한다면, 동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왕국 "아맥"이 있고 그 북동쪽에 아맥의 속국에 가까운 변방국인 "소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국인 소본의 왕녀인 "일라"가 주인공이며 아맥의 황태자(적태자라고 불리는)인 누한이 일라와 약혼 대상자인 것으로 시작합니다.아맥은 전쟁을 통해 지속적으로 국가를 성장시키고 영역을 넓히는 강대국이며 현재도 큰 전쟁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굳이 약소국이자 별볼일 없는 속국 소본의 왕녀와 황태자가 약혼하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작은 소본이지만 역사 이래 대대로 왕녀만이 가지고 있는 불가사의하고 신기한 힘 "마야"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일라는 아직 14살에 불과하여 "마야"가 발현하지 않았지만 17세가 되는 해 황태자와 약혼하여 아맥으로 떠날 예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야기 시작되는 첫 장은 바로 이 때, 14세의 일라입니다. 그리고 일라는 소본의 왕녀이지만 어느 날 알 수 없는 지독한 열병에 걸려 기억상실이 된 채로 깨어납니다. 이 부분에서 "수정호수의 마녀"가 재미있고 몰입되는 여지가 생기는데, 14세의 힘 없고 미약하고 체력도 약하며 발언권도 없는 속국의 왕녀인 일라가 기억상실을 계기로 스스로의 삶을 "처음처럼" 개척하고 성장해나가게 됩니다.일라는 기억을 잃은 대신 또는 덕분에 기존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없기 때문인지 에전과 달리 하고 싶은 말도 하고 평소같지 않은 행동도 하며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갑니다. 예전같으면 지소의 먹으라고 하는 탕약도 말 없이 먹었겠지만 왠지 몸이 거부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끝까지 먹지 않습니다. 이 장면에서부터 일라는 자신이 소본에 위폐되어 있고 거의 갇혀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고 아무도 자신이 강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부터 시작되는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과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일라의 운명을 바꿔놓기 시작합니다. 이후 지소, 마리, 위지 그리고 강한 무사인 사아까지 다양한 등장인물을 거쳐가며 일라는 한 명의 인간이 되고 한 명의 왕녀가 되고 동대륙을 움직이는 "마야"의 힘을 가진 인물이 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