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주영헌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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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를 잊고 산 사람입니다.

독서를 좋아하지만 주로 실용 서적이나 베스트셀러 소설에 관심이 많습니다.

글을 통해서 얻는 이득을 계산하며 책을 선택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ㅠㅠ

시를 읽으면 이런 저의 마음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글을 여유롭게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읽고 치울 과제처럼 여길 때가 있거든요.

시는 내용이 짧지만 긴 글보다 더 천천히 읽어야 해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작가가 선택한 최선의 것을 알아볼 수 있으면 좋잖아요.

최근 속독에 푹 빠진 저에게 잠시 천천히 걷는 여유가 필요했고, 그래서 이 시집을 펼쳤어요.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처럼 이 책은 사랑과 이별에 관한 시가 담겨 있어요.

이 시집을 읽으니 제가 잊고 지냈던 감성이 떠올랐어요.

시를 읽으니 ‘작가는 가슴에 사랑이 가득한 남자이구나, 이런 남자의 사랑을 받는 여자는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부질없는 것임을 금방 깨닫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남자의 사랑을 받는 여자를 부러워할 자격이 없어요.

저에게 이런 글을 써주던 남자들도 있었는데, 저는 그런 남자들은 사랑하지 못했고 저를 괴롭게 하는 남자와 결혼했거든요.

참 아름답고 고마운 사랑이지만, 사랑은 쌍방향이 아니면 결국 고통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이 시집 때문에 잊고 지낸 기억도 떠오르네요.

제가 어느 추운 겨울에 강릉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 안목해변에 서 있다가 바다에 뛰어들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사랑이 힘들고, 사는 게 힘들고,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져서 모든 것을 탁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종교에 의지하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을 붙들 장치가 없었거든요.

강릉의 겨울 바다는 파도가 아주 높더라고요. 누가 바다에 빠져서 소리를 질러도 파도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멋진 카페가 가득한 안목해변이 저에게는 별로 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가 아니랍니다.

그런데 이 시집을 읽고 안목해변에 대한 어두운 이미지가 씻겨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시인은 안목해변에 사랑하는 연인과의 추억이 있어요. 시에 종종 안목해변이 등장하거든요.

덕분에 이제 안목해변을 떠올리면 아프고 힘든 기억보다는.. 주영헌 시인이 누군가를 사랑했던 추억이 있는 장소라고 기억할 수 있겠네요.


주영헌 시인의 시에는 남자의 섬세한 사랑이 아름답게 녹아 있어요.

일부러 품이 큰 겉옷을 입고 가서, 추위에 떠는 여자를 안아주고 싶다고 말하는 시인.

그는 해변에 닿은 파도를 바라보면서 바다가 해변을 두드리고 육지를 껴안는다고 표현합니다.

이 시집은 이별을 겪은 분에게 선물하고 싶네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힘든 시간을 겪겠지만, 곧 빨래가 잘 마르는 것처럼 마음이 뽀송뽀송해져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준비가 될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요.

사랑과 이별은 이제 유부녀인 저와 상관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요.

어쩌면 저는 아직도 이 단어들과 밀접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이 시집을 읽고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눈물이 울컥 차오르기도 했거든요.

제가 꾹꾹 누르고 있던 낯선 감정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사람으로 사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다채로운 감정의 빛깔이 있음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인생에 기쁨만 있다면 꽤 지루할 것이고,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깨닫지 못할 테니까요.

작가는 이 시집에서 픔으로 끝나는 말이 슬프다고 말했는데요.

픔은 안아주는 가슴의 옛말이라고 합니다.

내가 바라고 기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 슬픔이 저의 따뜻한 품으로 밝아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혼이 성숙해지기 위해서 시를 자주 읽어야겠어요.

시집의 뒷장에는 원고지가 들어 있어요. 원고지의 의미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어요.

직접 시를 지어 보라는 것일까? 시집을 선물할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으라는 것일까?

선택은 독자인 우리들의 몫입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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