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평전 - 문명에 파업한 비폭력 투쟁가 PEACE by PEACE
박홍규 지음 / 들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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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비폭력주의, 물레를 돌리는 간디 사진 등이 대표적이겠죠.  우리는 간디의 풀네임을 '마하트마 간디'라고 알고 있죠. 그런데 마하트마는 '성인'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간디 평전>에서는 이 마하트마를 거부합니다. 간디를 절대 마하트마 칭호를 주지도 않고 인간의 입장에서 그를 보는 시간을 유지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데는  간디가 어린 손녀와 나체로 잠을 잔 팩트도  성인으로보다 인간으로 간디를 조명하는 이유도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간디가 성인은 아닐지라도 위대한 지도자로 남게 한  이유는 '평생 책을 읽고 행동한 사람이었다는 것과 그가 평생을 한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이야기하고 비폭력, 청빈, 자기성찰을 간디가 인도에서 풀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간디에 대해 어렷을 때 위인전으로만 알던 모습과 어떻게 다른지를 저자의 평론으로 알아봅니다. 



저자는 박홍규 영남대 법대 명예교수십니다.  영남대에서 법학을 전공하셨고 석사를 하시고 오사카시립대 법학박사시고. 세부전공은 노동법입니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등에서 연구교수를 하셨네요.  <반항과 창조의 브로맨스 에밀졸라와 폴 세잔>,<소박한 자율의 사상가, 이반 일리치>,<오월의 영원한 청년 미하일 바쿠닌>,<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등의 인물사를 저술하셨고 다수의 번역서도 출간하셨습니다. 




간디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간디가 카스트제도를 찬성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간디에 대한 오해라고 하네요. 간디도 카스트제도에서는 3계급일뿐인 바이샤출신이죠.  카스트제도를 부정하지 않은 이유는 카스트제도는 직업공동체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도의 독립을 위해서는 기존질서는 인정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했습니다. 이런점에서 많은 논란이 있죠. 하지만 간디는 자신이 바이쌰라는 걸 자랑스러워했다는 걸보면 간디의 진심을 믿어도 되고 현재는 카스트들간의 지원제도를 통해 카스트내에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간디를 대표하는 표현을 들라하면 사티하그라하(파업)입니다.  그래서인지 간디가 태어나기전에 발생한 인도최초의 독립운동 세포이항쟁을 가장 먼저 다룹니다. 이는 가장 먼저 인도인임을 자각한 항쟁이었습니다. 항쟁은 실패했지만 이를 지지하는 항쟁이 인도전역으로 퍼저나가기에 매우 중요한 항쟁이고 간디가 했던 사티하그라하의 다른 형태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간디의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거쳐 런던유학에서 배움을 통해 제국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채식주의자였고 흰두교신자임은 유지합니다. 그는 인도인이었습니다.  1891년 법정변호사가 되어 인도로 돌아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간디의 남아프리카에서의 20여년간의 생활입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져서 자신의 카스트에서 쫒겨난 간디는 요하네스버그에서 변호사생활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많은 인종차별체험과 기독교에 대한 실망 등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요하네스버그에서  간디는 본격적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인 사티아그라하를 시작합니다. 그것도 민족주의로 말입니다. 




1915년 간디는 인도인의 열열한 환영을 받으며 인도로 돌아오고 그곳에서 민중의 지도자가 됩니다.  그때부터 처음에는 인도의 자치를 영국에 요구했고 그 다음은 완전독립을 요구하면서 비폭력항쟁과  감옥에 감금되는 것을 반복하는 삶을 삽니다. 결국 1948년 인도는 독립을 합니다.  그가 살아간 삶은 세계 대전이 1,2차로 겪었고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와의 교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도 만나고  독일의 히틀러에게 친구라고 표현하면서  비폭력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은 그가 1948년1월30일 고세드라는 흰두교도에의해 3발의 총알을 맞고 운명을 마칩니다. 



인도평전을 쓴 저자가 한국인이다보니  간디가 한국에 관해 관심있는지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를 이기자 간디는 찬사를 보냈고  만주국을 세우면서 일본을 감시해야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위인이 한국에 대해 동시대에 같은 식민지입장에서 조선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인가요. 그런 이유는  간디가 영국을 좋아했다는 점이고 인도의 독립도 지배자가 영국인에서 인도인으로 바뀐것에 불가하다고 생각했다고 한점이 간디가 특이한 면이겠죠. 이것은 인도라는 곳의 특성인듯합니다.  인도는 민족의식이 동질화된 곳이 아닙니다. 즉 한나라는 인식이 없는 곳이죠.  언어도 다양해서 영어로 대화하는 곳이 더 편한곳으로 현재도 남아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간디는 독립운동을 했고 결국 인도의 독립을 쟁취했습니다만 1년후 암살을 당했습니다. 그는 인도의 국부로 추앙을 받지만  그의 정신이 인도에 남아 있지는 않다는 저자의 결론이 의미심장하네요. 사실 현대문명을 거부하는 것이라 따라하긴 힘들죠.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인 리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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