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어의 노예인가? 언어의 주인인가? 말하는 주체는 생명을 묻고 싶었다 - 어느 정신분석가가 말하면서 생을 마치는 인간들에게 삶을 고백하다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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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가끔씩 우울해질때가 있습니다. 한계에 붙디친거같을때, 목표를 이룬사람도 허무함을 느낄때  자기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누구인가,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심오한 질문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이 없으니까 헛소리한다는 사람도 있겠죠. 모두다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판단해서 한소리씩 합니다. 물론 위로를 해주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아는 것을 최선을 다해 설명하는 사람도 있겠죠. 이것을 우리는 '언어'로 합니다.  이 언어를 중심으로 저자는 인간의 근원을 묻습니다. 저자는 언어마다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언어의 고백'을 통해 생명을 낳습니다. 그것이 언어입니다. 그리고 다시  언어를 낳습니다. 




저자 윤정은 시인이자 정신분석가시고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에서 심층심리센터를 운영하십니다. 28년간 3000여분을 치료하시고  정신분석가도 양성하고 계십니다. <흔적과 신호>,<자아는 바이러스다><무의식 생명의 지배자>등 29권의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인간은 말하는 존재죠. 인간의 문명도 언어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말이 없었다면 분명 우리의 문명도 없었을겁니다.  이 문명속에 우리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저자는 언어하나를 알기위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는지, 어디쯤가고있는지를 확인한후 언어를 낳습니다.  이를 위해 저자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보이는 인물을 '어디에 있었을까에 기록합니다.  그래서 '완전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러방식으로 어머니, 정서, 이름 등에 의미의 곱상함을 피게 합니다.  내 자신이 태어나는 과정일수있습니다.  이것이 나에대한 물음이었고 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언어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좀더 큰 존재인 인간입니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교회에서 만난 새로운 아버지가 저자와 함께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기표,  말하는 주체, 낯선 존재 등 언어의 깊이와 범위가 형이상학화합니다. 인간은 말자체가 형이상학이기때문일까요.  마지막은 생명을 다룹니다. 인간은 괘락의 집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죽음까지 각오하고 그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다만 죽음조차도 괘락으로 느끼지는 못하는 뜻합니다. 다만 언어가 생명을 느끼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쉽게 하던 말에 태생적 의미를 헤매고 다녀서인지 고통스럽습니다. 유전자속에 말하는 주체로 존재한다는데 그것을 발현하는 것이 또다른 길을 내는 새로운 말이 아닌가합니다. 많은 욕망이 나를 감싸면서 말하는 주체인 나는 사랑으로 말할 줄 아는 생명을 낳습니다. 그것이 언어이겠죠. 저자의 부모님이 만나 저자를 낳고 새로운 아버지를 만나고 다시  몸을 어루만지며 생명의 행위를 안고 사는 것이 인간이고 생명이고 존재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는 언어가 삶과 죽음을 연결한다는 중재자라는 의미로 더 잘 살아날 겁니다. 시와 철학을 오가는 저자의 정신분석에 경의를 표합니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인 리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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