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 경제학의 아버지, 신화가 된 사상가
니콜라스 필립슨 지음, 배지혜 옮김, 김광수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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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아버지 애덤스미스(1723~1790)는 스코틀랜드 커컬티에서 출생한 영국의 정치경제학자입니다. 세계적인 고전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을 저술했죠. 아마 많은 분들이 제목은 들어봤지만 실제 <국부론>이나 <도덕감정론>을 읽어보진 않았을 겁니다.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이 강하죠. 이 책을 읽지는 않았더라도 애덤스미스의 일생을 공부하면 18세기 영국의 상황과 경제학의 출발이 어떻게 태동되는지 잘알수 있게되죠. 저자가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역사학자이며 전기작가로 <애덤 스미스>의 전기를 통해 작게는 소심한 애덤스미스에서 세계 경제학의 태두로서의 애덤스미스가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보이지않는 손'등의 깨닮음을 함께 할 수있게 해줍니다.


저자는 니콜라스 필립슨(1937~2018) 전기작가입니다. 애버딘과 캠브리지대를 졸업했고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를 받았습니다. 애딘버러대에서 1967년부터 가르쳤고 교수로 지내다가 2004년에 은퇴를 하셨습니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연구했고 프린스턴대, 예일대, 독일 연구소등에서 방문교수로도 직책을 맡았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대학자를 꼽아보라고 하면 아이작 뉴턴과 애덤스미스가 아닌가 합니다. 근대역학을 정립한 근대이론과학의 선구자죠. 그리고 애덤스미스는 소위 경제학의 아버지이자 중상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을 선택할 수있는 이론을 정립하셨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작 뉴턴이 죽기전 4년전에 애덤스미스가 태어나 동시대사람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산업혁명이 시작하는 이론의 바탕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있죠. 기술과 사상에서 말입니다.


애덤스미스는 스코틀랜드 커콜디의 세관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커콜디는 스미스가 <국부론>의 저술한 곳이기도 합니다. <국부론>이 인기를 얻자 관세위원이 되면서 에든버리로 어머니와 함께 이주를 했습니다. 다만 커콜디와 에든버리는 16km거리군요.ㅎㅎ 고등학교때는 스토아학파와 준스토아학파의 윤리학 등을 깊게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4살에 글레스고대학에 진학을 하고 4년후 옥스포드 대학시절은 큰 만족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애덤스미스의 일생에서 데이비드 흄의 영향력은 엄청났습니다. 흄의 <도덕, 정치, 문학적평론>을 통해 스미스가 흄에 빠졌을거라고 추측합니다. 왜냐하면 스미스는 흄의 인간본성이론을 독특한 방식으로 사용하여 자신만의 방식을 다진 흄학파철학자가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흄과의 인연은 말년까지도 이어갑니다. 그후 에딘버러대교수를 거쳐 글래스고대학교교수로 이직을 합니다. 그 당시는 교수자리가 공석이 되면 치열한 경쟁을 통해 교수가 임명됩니다. 스미스는 에딘버리대에서의 명성과 아가일 공작의 후원이 더해지면서 자리를 얻게 됩니다.


1776년에 발표된 <국부론>은 2파운드2실링의 가격에 750부가 발행되었습니다. 이 책은 잘팔려서 스미스는 300파운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당시는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시간이 걸린모양입니다. 그가 죽을 시점인 1790년경쯤에 베스트셀러로 등급합니다. <국부론>은 상품과 서비스의 거래를 인간본성에 내재된 결핍에 깊은 뿌리가 있다고 하고 그 유명한 문구인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의 이기심이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거죠.이는 이기심이 부를 만든다는 거죠. 그리고 부의 진보는 분업에 달려있고 가격결정은 화폐가 아니라 노동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진보를 막고 있는 것이 봉건주의고 지주들은 토지의 개선보다는 확장에 관심을 가져서라고 합니다. <국부론>이 제대로 활약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사람들이 도덕적, 정치적, 지적 통계권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애덤스미스는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자 자신의 자료모두를 파쇄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의 청이 받아들여져서 실제로 많은 양의 그의 자료가 파괴되었고 출판된 서적과 미출간된 일부자료만 남겨두고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사생활을 매우 중요시여기는 애덤스미스의 성격탓이라고 합니다. 전기작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힘든 전기저작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이러한 이유로 애덤스미스에 관해서는 두권의 책과 그가 대학에서 한 강의를 받아적은 학생의 노트로 인해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서양의 시각은 모든 자료를 남기고 그것으로 후대가 분석하는 전통에서는 애덤 스미스는 까탈스런 사람이었나봅니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인 리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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