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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ㅣ 서가명강 시리즈 14
박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2차세계대전의 대표적인 패전국은 독일과 일본입니다. 독일은 히틀러의 나찌국이 유명하죠. 하지만 일본은 부각되는 인물이 없습니다. 바로 옆에 있지만 우리는 그만큼 일본을 모른다는 거겠죠. 태평양전쟁시 항공모함을 운영하고 비행기를 만들고 샤먼급 탱크를 운영하면서 한동안 미국을 괴롭혔을 만큼,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강대국반열에 올랐고 세계열강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일본의 힘의 원류를 정치사로나마 알수있게 해주는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입니다.이를 잘 알아야 한국에 맞는 대책을 세우고 이길수있는 방법을 찾을수있습니다.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등 4인의 사무라이를 통해 메이지유신을 조명합니다.
저자는 서울대출신으로 도쿄대에서 박사를 받으신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훈교수입니다. 일본사관련 도서를 많이 저술하셨고 특히 메이지유신 등 19세기 근대사를 전공하셨습니다. 신문칼럼기고는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에 많이 보입니다. 서가명강으로 저자의 사무라이에 관한 강의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일본은 세번째 막부인 에도막부가 들어서고 나서 250년간 싸움이 없는 안정화시기에 들어섭니다. 물론 외각의 사무라이들이 외구로 활동을 했겠지만 도시에 거주하는 가난한 월급쟁이 사무라이들은 칼은 들고 있지만 유학공부를 하는 시기가 본격화됩니다. 이 당시 대학격인 번교가 1751년이후 급격하게 늘어납니다.이곳에서 했던 유학공부는 메이지유신이후 근대화 변혁기에 밀려들어오면 서구문물을 이해하는 기초적인 토대가 됩니다. 저자는 100년간의 유학공부가 바로 독일은 칸트,헤겔을 이해하는 이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두 학문모두 형이상학을 다루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유학은 정치라고 합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않는 전쟁대신에 정치를 택했다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드디어 1853년 미국 동인도함대가 에도만에 들어섭니다. 이때 요시다쇼인과 사카모토 료마, 이또우 히로부미 등이 이 당시 에도에 있었답니다. 정말 일생일대의 강렬한 체험이었겠죠. 증기선에서 내뿜는 검은 연기와 소리의 강렬한 모습은 실로 놀라움일겁니다. 이때 미일화친조약이 체결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마지막 사무라이들의 나이가 18~26세로 매우 젊은 나이고 의욕이 들끓을 때였을겁니다. 조선과 강화도조약이 1876년이었으니 2-30년정도밖에 차이가 없었지만 일본은 너무도 멀리가고 있었습니다.
외세가 몰려들자 사무라이들이 가장 먼저 각성을 하고 나섰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길, 서구열강들은 무역을 하러들어오면서 전함을 앞세우고 들어왔습니다.이는 군인신분인 사무라이들을 자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전국시대를 떠올릴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들은 서구의 전쟁 문화를 끌어들여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근대화에 성공하는 나라가 됩니다.조선은 왜 일본에 밀리는 미련한 국가가 아니라 조선은 평범했고 일본이 너무도 빠르게 앞서서 서구열강화에 성공한 이유가 한국 식민화로 이어집니다.서구열강에게 19세기란 제국주의 시대였고 힘으로 땅떵어리 나누기에 골몰하고 있을때였습니다.서구의 개버릇배워서 아시아에 개짓(?)을 한거죠.ㅠㅠ
우선 메이지유신의 스승이라 불리는 요시다 쇼인입니다. 그는 조슈번소속이었는데 애도에 유학을 갔다가 이양선을 보고 소속번에 상소를 습니다. 우리도 서양무기와 서양식 병제를 채용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그리고 그는 패리함대로 가서 미국에 가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거절당했지만 정말 당찬 행동입니다. 거절당한후에 자수한후 투옥을 당합니다. 그후 그는 인재를 키우는 송하촌숙을 세웠고, 그곳에서 그는 학문자체몰입보다는 학문과 정치를 연결하는 토론을 장려했습니다. 그의 기본적인 생각은 인재를 길러야 함을 강조합니다. 19세기 존왕양이이와 더욱 급격한 쇄국론자, 개혁론자가 격돌할 당시인데 쇼인은 존왕양이는 맞지만 쇄국은 아니고 외국문물을 깊이있게 받아들이자는 쪽이었습니다. 그는 초망굴기론을 펼쳤는데 이런 주장을 한대가로 사형을 당합니다
희대의 낙천가 사카모토 료마는 손정의회장이 존경하는 인물로 유명합니다. 사카모토료마는 도사번출신으로 토막운동(막부타도운동)을 했습니다. 료마집안은 상인집안이었지만 사무라이신분을 사서 향사가 된 경우라고 합니다. 조선에서 양반을 사는것과 비슷한 거죠. 료마는 난학(네덜란드학)을 접했고,양이냐 개화냐에서 부국강병을 위해 개화를 택하게 됩니다. 오랑캐를 내쫒자는 막부의 주장에 반대노선에 서게 됩니다. 그는 쇼인의 제자가 되었고 역시 초망굴기론을 내세우면서 사무라이의 권력을 내려놓으라는 요구를 하게 되며 탈번을 하게 됩니다. 탈번을 하게 되면 사무라이는 낭인이 되엇고 그후 료신은 일본 해군을 건설에 매진을 합니다. 1860년대는 존양파와 막부와의 전쟁가 치열해집니다. 열강에게 일본을 내주느냐 마느냐로 막부와 번사이에 각종 쿠테타로 혼란스러워집니다. 쇼마는 사쓰마번과 조슈번사이의 중재자로 나섭니다. 그리고 대정봉환공작을 합니다. 이는 막부의 권한을 천왕에게 돌려주는 겁니다. 막부가 권력을 유지하기 힘든 상태에서 내린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는 메이지유신으로 가는 길목이었지만 료마는 암살자들에게 목숨을 잃고 맙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사쓰마번출신으로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칭호가 있습니다. 사무리이로서의 서양을 배척을 하지 않았지만 사무리아들을 안가다 중간에서 끼어죽었다고 저자는 평을 합니다. 이자가 일본역사에서 존경받는 몇몇인물중 한명이라합니다. 메이지유신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혁입니다. 그 변혁은 사회적 고통도 따르게 됩니다. 이를 안고 죽은 것이 바로 사이고였습니다. 이 당시 일본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국시대에 맞먹는 혼란이 발생합니다. 막부가 조슈번으로 쳐들어가지만 조슈번은 이미 서양무기로 무장한 단단한 진영을 완성해서 막부는 연전연패를 하게 됩니다. 사쓰마번을 통제하게된 사이고는 메이지정부의 총지휘자가 되어 애도막부를 치게 되고 애도에 원정군을 끌고 도착한후 사이고는 도쿠가와 요시노부와 마지막 단판 차회담을 열어 결판을 내고 애도를 접수합니다.
마지막은 일본의 철혈재상 오쿠보 도시미치입니다. 그는 사무라이의 배신자로 낙인되어 있다합니다. 그리고 냉혈한 독재자로 불린답니다. 사쓰마번의하급무사집안 출신입니다. 그는 메이지유신을 이루는 데 많은 정치공작에 참여를 합니다. 사쓰마번출신의 사이고가 무력동원의 선봉장이었다면 같은 번출신의 오쿠보는 정치활동의 선봉이었습니다. 왕정복고와 신정부를 탄생시킵니다. 이 과정은 거의 혁명인데, 그들은 유신이라고 합니다. 왕은 원래부터 있었고 막부가 권력을 행사한 것을 왕에게 돌려받은 행위이므로 왕을 업는의미의 혁명을 붙이기에는 애매하였을 겁니다. 메이지정부는 중앙집권국가건설, 서양식공업화, 신분제철폐, 민족주의의 확립,민주주의를 내세우고 개혁에 착수합니다.
사람중심의 역사는 영웅주의로 마르크스 역사학자들은 싫어하겠지만 모두 사람이 하는 일임을 볼때 충분히 정리할 만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주체적 노력을 통해 아시아에게 가장 먼저 근대화를 달성합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경제전쟁이었던 플라자합의로 몰락을 하지만 아직도 세계 3번째의 경제대국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군사력은 미국에 아직도 밟혀있지만요. 아쉬운 것은 너무도 정치적인 차원에서 보다보니 일본의 산업화가 잘안보이는 측면이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내용도 다른 책으로 보완한다면 메이지유신후 일본의발전을 제대로 볼수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