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생명의 지배자 - 누가 당신을 지배하여 왔는가?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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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는 무의식은 성적업압을 말하고, 라깡은 언어와 상징에서 출발하고, 윤정은 생명과 현상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렵습니다. 왜 어려울까요. 무의식은 말그대로 의식이 없는 세계이기 때문 아닐까요. 우리는 의식세계에 삽니다. 모든것을 의식속에서 판단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참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고대에는 신입니다. 물론 지금도 신은 찾습니다만. 우리가 모르는 것을 커버해주는 큰 힘이고 지배자입니다. 그런데 <무의식, 생명의 지배자>는 우리의 목숨을 쥐고 있는것이 무의식이라고 제목으로 올렸습니다. 질병과 죽음 고통을 가로지르는 질서가 바로 무의식을 들어내려고 합니다. 인간의 생예 80년간 세포는 태어나고 죽고를 400번 반복하면서 몸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태어남이 이기지 못하고 우리는 소멸합니다. 의식은 무의식으로 빨려들어가버립니다. 얼마전 발견되었다는 블랙홀처럼요. 우리에게 존재하는관계의 현상을 인정하며 자기동일성에 붙들려있지말고 그것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인식하기보다 항상 현재임으로 의식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걸 페이지를 넘김이 쌓여갈수록 그 울림이 커집니다.

저자 윤정은 자기소통상담가라는 타이틀로 소개됩니다. 시인이며, 정신분석상담가이며, 월간 기독 편집장을 지냈다고 합니다. NLP마스터이고 태교, 죽음, 최면 등을 연구하고 교육한다고 합니다. 문득 저자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유튜브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멋진 육성으로 노래하는 영상이 있군요. 책의 기운이 저자의 인상에 잘나타난 느낌이었습니다.

책은 프로이드와 라깡, 그리고 저자 윤정의 무의식에 대한 생각을 3부로 모아두었습니다.

프로이드가 추구하는 무의식은 바로 문명속에서 인간의 어려움입니다. 인간이 문명의 속박에 묶기가 된것은 얼마되지 않는 사건입니다. 문명에 속박당한 인간은 본능을 표현못하도록 억압당합니다. 무의식이 억압당하면서 사람은 다양한 고통속에 살게 됩니다. 그 억압으로 부터 끌어내는 것이 무의식을 들어내는 작업일겁니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오이디프스 컴푸렉스이고 타나토스의 죽음충동입니다. 그래서 정신분열증도 문명이 가져온 사회화에 정착하지못한 자아가 자유로운 무의식 초자아에 붙들려서 타인이 보기에 제정신없는 반사회적 인간으로 폄하되어 버린다는 겁니다. 초자아 무의식의 성취를 열어주는 사회구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무의식의 숨통을 열어주자는 겁니다.

라깡은 프로이드의 계승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들고 나온것은 프로이드의 무의식을 언어의 감옥이라 했습니다.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에 의미를 두기 시작하면서 아무래도 더욱 난해해지는 면이 큽니다. 프로이드의 딸은 자가의 각성을 통해 인간의 아픔을 해결하려고 했다면 라캉은 문명자체가 무의식 덩어리이므로 그 자체를 인정하라는 것으로 인해가 됩니다. 인간의 본성은 소외와 결핍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세상은 소외와 결핍으로 꽉차 욕망합니다. 결국 남을 갈망하는 것은 문명을 갈망하는 것은 나를 갈망하는 것이 되어버려서 문명과 타자에 대한 무의미가 커져버립니다. 나를 사랑하는 욕구를 줄이려는 노력과 남을 사랑하려는 노력이 바로 결핍으로 꽉찬 나의 어려움을 줄여버리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마지막 장은 윤정의 무의식입니다. 프로이드와 라깡과는 달리 과학적 발견에 기반을 해서 무의식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충동, 소외, 결핍은 우주의 기본 원자에 스며있다는 겁니다. 우리도 다 알다시피 원자는 안정된 구조가 아닙니다. 전자 중성자등의 불완전한 상태의 충돌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에 같이 스며있는 충동 소외 결핍도 외부 자극에 따라 끊임없이 상호소통하게 되는 겁니다. 만약 원자가 불완전하지 않다면 그것은 죽음입니다. 주체는 불안속에서 영원하다는겁니다. 현상의 무의식 그곳은 생명의 본향이라 합니다. 불완전한 충동, 소외, 결핍의 요람일겁니다. 이 불안정함을 안정화시키려는 무의식의 확장을 막으려는 것이 윤정의 정신분석이란 노력일겁니다. 무의식이 그럴수밖에 없다는 현상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불안하지 않나요. 불만이지 않나요. 모두 무의식의 장난입니다. 아니 무의식의 본질입니다. 그것을 사랑하는 눈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현재의 어려움에서 자유로워 지는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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