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려 낙원국

율려낙원국 1 - 도적 포획기
김종광 지음 / 예담 / 2007년 9월

울긋불긋한 책의 표지가 마치 이 가을의 이미지를 빗대어 표현해 놓은 듯하다. 가을단풍이 절정을 이룬 산의 이미지가 불현듯 나의 뇌리에 형상화된다. 낱권이 아닌 책들은 읽기 전부터 겁이 나기 마련인데 우리가 지극히 잘 알고 있는 허생전을 조금 더 기발하고 재미있게 각색한 저자의 노력 덕분인지 스토리가 지루하지 않고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고전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터라, 아니 그간 나의 관심이 부족했다고 해야 하리라. 뒤늦게 그 의미를 되새기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인지 기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창조된 이야기가 재미있다. 

낙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낙원이라고 지칭하기까지는 저마다 기준을 두는 바가 있겠지만 모두가 꿈꾸는 터전을 말하는 것에는 분명하다. 작가는 허생이 이상국가의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과 함께 주변의 타락으로 다시금 부패되는 순간까지의 모습을 그만의 상상력을 곁들여 그리고 있다. 이 세상에 쉽게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으랴마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 틈에는 이를 방해하는 자가 꼭 등장하기 마련이다.

한난의 과정 속에서도 뒷걸음치지 않고 오히려 도적들과 맞부딪치며 나아가는 삶의 사실적인 모습을 고전 속의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가는 견주어 보여주고자 함이 아닐까. 허생이라는 인물에 대한 막연한 위대함을 그리려하기보다 권력과 돈의 횡포 앞에서 나약해지기도 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어차피 기존의 이야기에 곁가지 살들이 붙다보면 스토리 자체가 장황해지기도 쉽고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이런 우려마저 불식시키듯 각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잘 살려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소설을 읽으며 느끼게 되는 것은 작가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마저 고스란히 그들에게 대입해 놓은 것처럼 한순간 그런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런 사실은 독자들이 더 많은 공감과 재미를 얻는 데 한 몫 하는 것일 테지만. 많은 과정을 통해 어렵사리 이룬 낙원의 꿈, 모두의 바람대로 이룬 지상낙원은 결국 우리의 잘못된 관행과 어두운 자태로 한순간 꺼진 숯이 되어 탄 채 곧 재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삶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닐까.

적당한 거리에서 사랑과 질책이 필요한 아이들처럼,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이해관계가 도를 넘어서 지나치면 언젠가는 그 이상의 힘으로 한쪽을 누르려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 실리를 위해서는 적당한 상호이해협조와 눈높이가 필요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고전 속의 짧은 이야기를 패러디한 작가의 눈여김도 좋지만 사실과 허구적 상상력이 결합된 이런 스토리가 읽을 때마다 묘한 여운과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도적 포획기와 낙원 건설기라는 부제를 내세워 이야기를 그려가고 있는 작가 김종광님은 내게는 조금 낯선 분이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관심마저 이끌어서 좋은 계기가 된 듯하다. 국내 작가의 책들도 앞으로 많이 사랑해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