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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돔 그리고 별
박재은 그림, 한주연 글 / 부크크(bookk) / 2024년 10월
평점 :
백두산 폭발 그리고 자연이 주는 재앙.
우리는 익히 지구가 보내는 메시지를 알고있다.
우연히 접한 이 책은
작가의 상상력과 섬세함 그리고 세계관이 두터웠다.
정성스럽지만 간절함이 배어있는 문체도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SF라는 공상과학으로 접근한
'그랜드돔'이라는 가상 공간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이 공감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그간 접해온 미래의 모습은 대부분이 그렇듯
우주와 로봇, AI, 변종의 괴생명체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중점을 두었다.
이 책은 한반도의 몰락과 우리의 활화산
백두산의 폭발이 그 배경이라
무척 신선하고 현실감있다. 그래서였을까?
읽는 내내, 씁쓸했고, 쓸쓸했다.
문장과 행간이 묵직하게 나를 잡아끌었다.
가까운 미래 백두산의 대폭발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대한민국, 그랜드돔이라는
가상의 공간과 시간을 훨씬 더
자연스럽게 염려하며 촘촘하게 인도한다.
그랜드돔은 백두산 폭발을 예견하여 설계된
안전공간이지만, 그곳에서 어린이는 안전하지 않다.
계급과 등급에 따라 한정되는 산소마스크와 배급은
더 이상 어린이가 어린이다울 수 없고
어른도 어른답지 않았다.
재앙 앞에서 그들은, 또는 작금의 우리는,
얼마나 안전하고 인간다운지 역설적으로 묻고있다.
작가의 매끄러운 필력과 탄탄한 문장력은
어린 원구의 불안과 아이다움 그리고
대폭발의 잔상을 오롯이 담아내며
단숨에 때로는, 문장과 문단을 함께 서성이며
생각이 가파르게 차오르고 머물게 한다.
당연하게 여겼던 산소, 그리고 물과 음식,
(그와중에 학습권 차별이라니! 공부가 싫은
어린이 독자들은 오히려 반가울지도. ㅎ)
가족의 해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질서의 명분들.
로봇과 시스템 속에서 누구도 안녕할 수 없었다.
이보다 더 잔혹한 추락이 어디 있을까?
대폭발이 남긴 파괴력은 전쟁과 기아를 넘어
인간의 존엄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후속편이 기대되는 열린 결말은,
백두산 대폭발, 남북 분단을 담았던
비슷한 소재의 재난 영화와 결이 다른 서사이다.
두려움과 희망이 공존하는그랜드돔.
진구와 아빠는 추방당하며 해체된 가족이
재분해 되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런 낯선 끝맺음은 아득한 아쉬움,
진한 여운과 충격으로 남는다.
아이와 함께 읽기 전,
어른이 먼저 읽으면 좋겠다.
읽는 중간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덮기 전에
지구에 존재하는 활화산 자료들을
세심히 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소년 원구의 목소리가, 얼마전 우리가 겪었던
코로나 팬더믹을 연상케하고,
사회 구석구석에 팽배한 배타와 무질서를
고즈넉하게 꾸짖으며 나아가고 있다.
주저리주저리 적어 내려가는 지금 나는
챕북처럼 작고 얇은 한권의 그랜드돔을
차마 손에서 눈에서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이다지도 여운이 긴 책은 얼마만인가.
작가와의 만남이 기대되는 반가운 책이다.
허나,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살아야
보다 나은 선택인지 원구가 던진 질문에
부끄럽게도 해답을 찾지 못 했다.
투박한 활자, 어딘가 모호한 삽화는
종이책을 넘겨 읽는 기쁨만으로 충분하니,
애교로 넘어가기로 하자.
대형 출판사에 휩쓸리지 않는 양질의 종이책,
실력있는 작가를 발굴해낸 부크크 출판사(?)에
힘찬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나아가 시리즈나 영화, 웹툰으로
제2, 제3의 영상물과 콘텐츠로 제작되어,
[그랜드돔 그리고 별] 책이 발화점이 되는
위용을 떨치기를 염원한다.
밤이 깊도록, 서성이는 새해 벽두,
읽는 즐거움이 주는 어린이 문학의 힘에
어쩐지 뱃구레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안녕한 이 밤, 강단있는 어린 원구와 더 어린 진구,
구구형제에게 미안하다. 나는 참말 그러했다.
그리고 올해는 더 나은 어른으로 다시,
잘 살아봐야겠다. 불끈질끈, 열의가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