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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 아이들 ㅣ 창비청소년문학 45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평점 :
정의롭지 않은 사회, 난무하는 폭력, 부당한 대우, 관계의 단절 등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곳.
범죄자 자녀나 고아 등 불우한 아이들을 모아 최상의 무상교육으로 각자의 재능을 개발해 준다는 로젠탈 스쿨.
외딴 섬에 자리 잡은 이 학교에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마피디와 촬영기사가 들어가면서 책이 시작된다.
심상찮은 분위기로 정상적이지 않음을 감지한 마피디는 은휘의 은밀한 도움으로 부조리를 파헤치지만, 결국은 아무런 변화도 이루어 내지 못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마치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해피엔딩으로 끝났더라도 다시 반복될 것을 알기에 같은 기분이었으리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수단화 하고, 도구화 하는 사회이다.
나와 남을 분리하여 생각하도록 교육과 제도가 우리를 점점 불의에 눈감게 만든다.
잘못된 일을 눈앞에 보면서도 외면이 일상화된 사회, 바로 여기가 로젠탈 스쿨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을 발견한 사람에게 질타를 보내고 외면하기를 강요하는 사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오히려 떳떳하게 소리치고 군림하는 사회.
부조리는 고쳐져야 하며, 이를 소리내어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하고, 그리고 함께 고치려 노력 하는 사회가 되기위한 교육이, 경쟁이 아닌 정의로움을 가르치는 교육이 자리잡아야 한다!!!
우울하고 부조리한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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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특별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라 그런 과정을 겪고 변색되는 게 인간관계의 본질이거나 때로는 전부이기도 하다는 것을, 마는 조금 더 세월이 지나고서 알았다. 나아가 사회인이 된다는 건 - 어떤 직업을 가지고 경제 활동을 하는 사회 구성원이 된다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삭막한 섬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걸 깨달아 온 시간이었다.
238쪽-
~(마피디)
- 검사님, 정말 모르시겠어요? 누가 책임자인지! 누구를 제일 먼저 끌고 나가야 하는지 모르시겠냐고요!
나머지 교사들과, 무엇보다도 교장과 함께 아이들을 이 섬에 두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자 마는 온몸에 아드레릴린이 솟구쳤다. 학생들 가운데 심각한 인명 피해자가 나오지 않고 누구도 그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 이상은 교장의 교육 방식을 문제 삼아 즉시 구속 가능한 법은 없었다.
~ - 너희들 정말 그것뿐이야? 더 할 말 없냐고! 이대로 이 섬에 처박혀 있으면 이 아저씨들 여기 다시는 못 올지도 모른다고! 지금 아니면 기회가......
박이 마의 어깨를 두드리면 눈짓을 보냈다. 처음에는 이제 그만해라, 충분히 애썼다는 격려의 표시인 듯했는데 점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이렇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내가 얼마나 권한 밖의 일을 많이 저질렀으며 갖은 인맥을 동원했는지 알기냐 하느냐는 뜻이 담겨 있었다. 기껏 네놈 하나 살려 주려 왔는데 일 크게 만들지 말고 떠나자, 응?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으름장이었다.
~(교장)
- 그런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보세요. 피디님은 말도 안 된다고 펄펄 뛰기만 할 뿐 그렇게 흥분하는 데에 상응하는 대책은 없으시죠. 이 아이들은 모두 갈 데가 없습니다. 성인이 되고 자립하기까지, 여기가 집입니다. 뼛속 깊이 여기에 적응하고 있어요. 어느 쪽이 아이들을 위하는 길인지 생각해 보시지요. 어디가 풀려나는 곳이고 어디가 묶여 있는 곳인지를요. 다시 말하지만, 아무런 대안 없이 이 아이들을 길바닥에 풀어 놔 보았자 갈 곳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서 자신들의 능력껏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기대 목표를 성취하지 못해서 일정 부분 제재를 가하는 일이 없지야 않겠지만 다른 학교라도 그러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기준과 방식에 따라 생활하는데 당신들의 기준을 우리한테 갖다 끼워 맞추고서 그것이 폭력이니 아니니를 따진다는 건 무의미합니다.
~ 은휘는 처음부터 자신의 소임이 오지랖 떨다 위기에 놓은 외부인을 무사히 돌려보내는 데까지였다는 듯, 초월에 가까운 불가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수그린 마의 고개 위로 체념과 환멸이 몰려왔다. 큰소리쳤던 기세와는 달리 결국 단 한 명도 구할 수 없었고 손에 쥔 거라곤 그 자체로 어떤 결정적 단서가 되지 못하는 동영상 자료와, 전문가한테가 아니면 숫자 암호로밖에 안 보이는 엑셀 파일들뿐이었다.
~ 그 뒤로 로젠탈 스쿨은 다시 철저한 비공개 상태로 돌아갔기에 거기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으며 교장과 보건의 이하 교사들이 여전히 거기서 근무하고 있는지, 인사이동은 없었는지 등을 더 이상 알아볼 만한 경로가 마에게는 없었다. 무엇보다 섬세하고 내밀한 키를 쥐고 있었던, 해경의 도움을 얻는 데에 직접적인 역할을 한 은휘가 그 섬에서 아직 무사한지가 초조할 만큼 궁금했고 윤과 정이 구속되는 데 한몫 보탠 혼모와 지하실의 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두 교사의 이후 조사 내역과 행적은 역시 이사장이 비밀로 부쳐서 그들이 섬으로 돌아갔는지 여부도 알 수 없었고 만일 귀가 조치되었다면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했을지는 더욱 짐작조차 힘들었다.
~ 그러나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 아이들이 단 한 가지만은 알려 주었다. 그들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만 한 사람을 살리는 데에 어설프게나마 협동함으로써, 오히려 어설프기에 계산이나 의도가 담겨 있지 않은 순순한 마음을 보여 주었다. 그 도움을 본인들에게 돌려주지 못한다면 다른 이에게 줄 것이다. 누군가가 건져 준 삶으로 표면에 드러난 매끈한 피사체만을 찍는 일은 사양할 것이다. 그의 파인더가 포착해야 할 것은 뒷면에 웅크린, 불분명한 부피와 형체를 갖고 있음에도 육감이나 촉각으로 알 수 있는 어떤 음각이다. 그는 앞으로 몇 번을 땅에 구기박질리더라도 다시는 그 누구도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촬영을 오래도록 기다리던 학생이 지친 목소리로 불렀다.
"아저씨."
그리고 지금, 그게 누구든 간에 등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똑바로 돌아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