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빈 거울에 담긴 노래 : 마조 21세기를 사는 지혜의 서 13
오쇼 라즈니쉬 강의, 손민규 옮김 / 태일출판사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오쇼는 인도의 영성가다. 깨달음을 얻은 구루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행보는 조금 독특하다. 조르바 붓다를 자처하며 세속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지혜를 둘 다 자유자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법문은 아주 다양하다. 자신의 독자적 가르침 외에도 다른 제도권의 여러 종교와 철학들마저 건드리지 않은 것이 없다. 오쇼가 선에 관해 이야기했다길래 책을 한 번 사다 읽었다. 인도의 구루가 중국 선불교 선사의 가르침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이색적인 풍경이다. 한 권 다 읽어보고나니, 결과적으로 특별할 것은 없다. 평이하다. 안목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하겠지만서도, 법문의 내용이 아주 깊고 치밀한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초심자들에 대한 법문이어서 그러하리라. 오쇼의 법문에는 조금 시적인 냄새가 난다. 그의 법문은 아름답다. 그는 미사여구를 잘 쓴다. 그런 미사여구에 사람들은 현혹되기 쉽다. 그의 아름다운 말들과는 반대로, 깨달음의 현실은 의외로 건조하고 담담하며 맛이 없다. 오쇼는 타고난 비즈니스꾼이다. 그가 깨달은 구루였다는데는 이견이 없지만... 그는 깨달음을 '상품화'하는데 재주가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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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야 2020-02-2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년 오레곤 주의 공동체 건설 과정에서, 폭주하던 추종자 집단의 탈법과 불법을 통제하지 못(안)한 오쇼의 모습에서 깨달음의 건조/무력함이 엿보이는 듯 싶습니다. 오쇼의 저작에 잠깐 관심을 가졌을 때, 그러한 말년의 흑역사를 알게 되고 흥미를 잃어버렸었지요. 아마 당시에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전능에 가까운 깨달음이라는 환상에 의거하여, 실망 및 평가절하를 하게 되었던 것이겠지요.

그러다가 최근에 우연히 오쇼의 저작 일부를 읽게 되었는데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기는 했다 것이 와닿았습니다. 이는 그간의 경험으로 말년 공동체의 추태와 오쇼 개인의 깨달음을 어느 정도 분리해서 보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지난 세기를 풍미하였던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 중에 오쇼만큼 장사를 잘했던 사람은 없었으며, 또한 수없이 많던 영적 장사꾼들 중에서 오쇼만큼 깨달았던 사람은 없지 않았나하는 감상입니다.

2020-02-22 19:11   좋아요 0 | URL
우야님의 감상에 적극 공감합니다.... 그는 정말 뛰어나고 감각있는 구루였던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깨달음에 지혜로운 처신과 윤리적 도덕이 같이 따라온다고 생각하지만... 깨달았다고 알려진 일부 선사와 구루들의 행보를 보면 그렇게 이야기 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깨달음은 깨달음의 영역이 있고, 삶은 또 삶의 영역이 있는 것 같습니다..

keispigel(케이) 2020-02-2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달은 이의 행보는 도덕 윤리와는 별개다 도덕적으로 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닭님의 글에서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그건 깨달음이 선을 지향하지 않는것이 아니라 기존의 도덕 윤리 자체가 우리 관념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일겁니다. 오쇼가 스리 바가반으로 알려졌던 때 홍신자선생님같은 순수한 구도자들이 제자를 자처했던것은 그의 영성이 가공이나 과장이 아니고 당대의 크리슈나무르티에 필적하는 거대한 울림을 가졌기때문이라 생각합니다

2020-02-23 16:37   좋아요 0 | URL
‘기존의 도덕 윤리 자체가 우리 관념에서 만들어졌다‘는 케이님의 의견에 상당 부분 동의하지만.. 조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윤리학자들에게는 민감할 내용일테니까요...

오쇼의 영성이 당대에 거대한 울림을 가졌다는 것에는 정말 이견이 없습니다.. 지금도 오쇼는 구도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keispigel(케이) 2020-02-24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습니다 도덕윤리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지요..도덕윤리는 그 자체로 당연히 필요한것이구요.제가 지금까지 보아왔던는 깨어난 분들은 타인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더크다고 느껴졌습니다. 사회적인 도덕과 윤리보다 더 큰 ..존재자체에의 경외심..다만 깨어났어도 음주와 자유분방한 관계 등 사회의 선호적인 윤리에 부합하지 않을수도 있다고 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깨어남이 주는 울림은여전히 전해지더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2020-02-25 17:02   좋아요 0 | URL
네.. 경외심인 것 같습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경외심... 지금 여기의 모든 것이 낯설고, 신비로운 경외심... 그것이 이것의 전부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