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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예술 ㅣ 윤혜정의 예술 3부작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7월
평점 :
📚인생, 예술_윤혜정
예술이라는 단어에서 엄중함과 압박감, 남해함을 느끼는 나에게 작가가 들려준 일화에 마음이 퐁당 녹아버렸다. 누구나 경이로움과 장엄함을 느낀다는 작품 앞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자신의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작품 앞에서 천사의 장엄함에 흥분하거나 울어 버리지 못한다는 건 어저면 자기 의지대로 잘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 모른다고. 이보다 친절하고 예술이라는 장르 앞에서 모든 부담을 내려놓게 할 마법의 문장이 있을까? 작가는 자신의 느낀 바를 전문가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 온전하게 풀어내고, 이를 삶에 연속성 앞에 솔직하게 풀어내며 자신의 지혜를 공유한다.
아주 오랜만에 예술에 대한 중압감을 내려놓고, 온전히 현대미술(그 악명높은!)을 감상하고 이를 통해 인생을 사유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 무려 글 속에 등장하는 현대미술 작품들을 실제로 감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첫 작품이다. 등장하는 설치미술조차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예술로 치유받는다'는 건 결국 작품과 내가 일대일로 대면하는 은밀한 순간에 나를 잠시 잊는다는 것과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란 무언가에 압도되는 경험을 욕망하는 동시에 자신을 잃는다는 것에 근원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이중적 존재가 아닌가. 결국 인간이 온전히 '예술을 사랑한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창고 피스>는 많은 예술가가 직면하는 '전시할 공간은 있지만 보관할 공간은 없는 모순적인 상황'을 공론화하며, 예술가의 자기 풍자와 미술제도 비평의 원형으로 회자되었다. (...) 누구나 사소하거나 중한 결핍들을 안고 산다. 결핍이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는 강한 힘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결핍을 채우며 산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다. (...) 세상의 현자들은 결핍에 지지 말고 이를 에너지 삼아 더욱 정진하라고 독려한다. 그러나 결핍 자체나 해결 방법보다 결핍을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용기의 어원은 '심장'이라는 뜻의 라틴어 코르, 즉 '내가(당신이) 누구인지 진심을 다해 이야기한다'는 의미라고 하던데, 이것이 비단 예술가만을 위한 전언은 아닌 것이다.
✏️심리학자 카를 융이 언급한바 "삶의 여정에서 장애물을 만날 때면 결국 내면이 나를 구해 줄 것임을" 자코메티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코메티의 작업은 세상의 모든 불완전한 것에 대한 경배나 다름없다.
매 순간 존재를 고민하는 우리를 향해, 속절없이 가는 세월이 초조해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으려 용쓰는 나를 향해 결코 완벽하지 못했던 한 인간이 온갖 상처를 자처하며 덜어 내고 비워낸 미완의 것들로 비밀스럽게 용기를 전한다.
✏️미술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작품을 함께 보면서 불안정성을 느끼는 게 비폭력적이고 내향적인 공존의 길이라고, 이 세상에서 함께 존재함을 경험해 보라고, 관심을 자기 내면으로 돌려 보라고 다독이는 것이다. (...) 요즘 미술은 더 없이 훌륭한 재테크 수단이지만, 나의 미술은 긍휼의 마음을 내보이면서도 대가를 바란 적이 없다.
✏️자신의 작업과 삶을 어떻게든 지속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어쨌든 일상의 루틴을 만드는 데 엄청난 수고를 감내하는 함경아는 경험, 기억, 일상에서 길어 올린 자신의 예술적 사유를 실천하기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가는 작가다.
✏️거의 모든 예술가가 불확실성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 작업할 것이다. 하지만 한 발 더 나아가 함경아처럼 불가능성, 불가피성, 불완전성 등 모든 변수를 미술적 요소로 끌어안을 뿐만 아니라 이 변수에 스스로를 기꺼이 노출시킬 수 있는 예술가는 결코 흔치 않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현대미술과 같은 난해한 예술에 대한 해박함, 다양한 시대 상에 대한 지성, 인생에 대한 지혜로움과 그것이 깃든 가치관, 더불어 이와 같은 에세이를 써내는 필력까지 작가님의 다른 행보가 진심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