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유시민 지음 / 개마고원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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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왜 우리는 조중동을 비난하는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노무현이 조선 일보와 싸우는 이유. 그 이유를 알아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언론이 한 정치인을 조진다. 더 나아가 한 나라의 대통령을 밟는다. 꼭꼭 밟고는 다시는 물 위로 올라올 수 없도록 수면으로 던져 버린다. 그리고는 올라오라치면 계속 가라앉힌다. 얼마나 무서운 신문인가. 언론인가. 한 사람의 명예도 진실도 중요치 않다. 자기 자신이 왕이다. 조선 일보. 그게 대체 뭐길래. 알고 싶다면 읽어 봐야 할 것이다. 그 들의 외침 소리에 묻힌 처절한 진실을. 우리들은 이제부터라도 마주 봐야 한다. 그 들의 발길질로 무참히 쓰러져 가는 정치인들을 마주 봐야 할 것이다. 책을 모두 보았는가.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자 눈 앞에 있는 신문 한 장이 진실인가 아니면 진실은 바로 당신의 어깨 너머에 따로 있는가. 왜 우리는 촛불을 드는가. 왜 우리는 그토록 울었는가. 나는 오늘 그 이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고 있다.

보라. 민주당 대변인이 개인적으로 신문사와 소송을 하는데 그 신문사의 일개 출입기자가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을 닦달한다. 대표실에 함께 가서 대표가 미리 보고를 받고 허락했는지 여부를 직접 심문한다. 소송을 취하하지 않으면 재미없다고 협박한다. 그 정당에 비판적인 기획 기사를 무기로 삼아 협상하고 거래한다. 공당의 대표 비서실장이라는 국회 의원이 그 앞에서 설설 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종창은 노무현을 조지는 기사를 썼을까. 1년 전에 취재한 것을 굳이 그 시점에서 보도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노 의원과 나는 인연이 묘하다. 학교도 다르고 부산 사람이라는 것 이외에 공통점이 없다. 87년 9월 노무현 의원이 거제도 옥포사건으로 구속 되었을때도 의원직 사표를 냈을 때도 그에 대해 우호적인 기사를 썼다. 그런데 그 이후에 내게 들려오는 노무현의 참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같이 활동했던 변호사도 만나고 했더니 내가 쓴 기사 내용과 판판이 다르더라. 내가 잘못했구나. 바로 잡아야겠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우종창 기자. 이 말이 진실이라면 정말 훌륭한 언론인이다. 

우종창이 사명감에 따라 썼든 오더를 받아서 썼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조선 일보가 노무현을 조진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기 때문이다. 조간 조선의 보도가 사실이라고 친다 해도 노무현의 재산을 다 합쳐서 10억이나 20억이고 형이 땅 투기를 좀 했다고 인정하더라도. 다른 정치인들의 경우와 비교해서 특별히 문제가 될 일은 아니지 않느냐는 오연호의 질문에 우종창은 이렇게 대답한다. 

일단 노무현 의원은 우리나라 299명의 의원 중에는 조금 다른 의원이라고 봐야 한다. 청문회 스타이기도 하지만 차세대 지도자 대권주자 얘기까지 하는데 상당히 책임을 져야 하는 지도그룹이다. 자기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시인해야 하는데 어물쩍 넘어가고. 내가 볼때는 노 의원은 국민들이 다음을 맡겨도 좋겠다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브라보. 조선 일보. 역시 신문 그 이상의 신문. 대한 민국을 지배하는 밤의 대통령이 이끄는 1등 신문 맞다. 조선 일보는 치밀하고 단호하다.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이 대중적 지도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 미리 미리 약점을 조사해서 더 크지 못하도록 꼭꼭 밟아준다. 노무현 자신은 2000년 4월 총선 무렵. 처음으로 진지하게 대통령 출마를 생각했다는데 조선 일보의 일개 취재 기자 우종창은 그보다 10여 년전에 벌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치인이 언론을 두려워 하는 것은 군사정권 시절 지식인이 권력을 두려워 한 것과 같다. 독재 정권에 항거 했던 사람은 자부심도 있었고 떳떳 할수 있었으나 언론에 찍한 사람은 여론의 비판을 받기에 명예를 난도질 당하는 더 가혹한 고통을 받는다. 수구 세력 대공세 선봉에 조선 일보가 서 있다. 조선 일보는 독재 권력과의 야합으로 부정과 특혜를 통해 쌓아올린 기득권 세력이며 언론시장에서 부당한 과실을 누리고 있다. 조선 일보는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은 절대 용납 할 수 없다며 조선 일보식 정치구도를 만들고 있다. 내가 조선 일보를 상대로 버거운 싸움을 하는 것은 개혁 세력방어를 위한 전력이며 몸부림이다. 동아 일보와 중앙 일보는 차기 정권을 좌지우지하려 들지는 않는다. 중앙 일보와 동아 일보는 지극히 보수 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나 유연해 질 수 있으며 이들의 보수적 시각에 합리적 책임감을 더 한다면 합리적 보수신문 건강한 보수언론으로의 변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조선 일보의 병씨 일가가 스스로 변화할 가능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통령한테 아부하기 위해 이런 엄청난 모험을 하진 않았다. 언론과의 전쟁 발언은 기자들과 논쟁하던 중애 소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수구의 총공세를 막아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 내가 피하려고 해도 공격을 받는다. 당연히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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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더블콜 보단 역시 엔들리스 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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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히 잠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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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김소형 옮김 / 조은세상(북두)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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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나라라는 건 대체 뭘까. 백성들 모두 굶주리지 않는 나라. 요마의 공격이 없는 나라. 푸르르고 짙푸른 나라. 인걸까. 십이국기를 모두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요코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모두 서로를 존경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백성 한명 한명이 경국의 왕이며 주인이라고. 아마 그 것이 답이리라 본다. 왕과 기린. 그리고 십이국의 백성들. 모두 하나로 합쳐서 천천히 흐르는 강같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딱 두 가지의 왕이 있다. 우왕과 현왕 더 있다고 해도 그 두가지로 분류된다. 왜일까. 어째서 우왕은 우왕이며 현왕은 현왕일까. 그 수 많은 백성들을 짊어지는 왕은 눈 앞의 운명을 같은 하늘에서 같은 시작을 맞이했음에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걸까. 그 답을 경국의 여왕이 내릴 수 있을까. 라크슌의 말대로 경이 어떤 나라가 될지 지켜보는 것이 그 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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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 1 - 마법사 하울의 비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문학수첩 리틀북) 1
다이애나 윈 존스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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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하울은 정말 너무 엄청 좋아하는 캐릭터다. 소피와 하울의 사랑이야기는 아직도 날 무척 설레이게 한다. 그런 하울도 원작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을때 당장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울. 다이애나 윈 존스의 하울은 여자의 심장을 파먹는 냉혈한 마법사로 나온다. 물론 진실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심장을 캘시퍼에게 준 것이니 여자의 심장이 아닌 자신의 심장을 불꽃 마귀를 위해 바친 셈이 된거라고 보면 된다. 물론 하울은 겁쟁이다. 여자의 심장을 먹는 하울. 이라는 명칭도 하울이 하울의 제자 마이클에게 퍼트리고 다니게 해서 얻은 것이니 겁쟁이도 이만한 겁쟁이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소피와 하울의 초반에 이루어 지는 배틀은 정말 볼만하다. 뒤로 가면 점점 지긋 지긋해 진다. 다이애나 윈 존스는 남녀의 말다툼과 미묘한 감정을 잘 이끌어내 주었다. 보는 독자 입장에서도 진저리가 날만큼. 그러나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하고 하울의 진심을 알게 되면 싱거운 웃음을 짓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게 된다. 하여간 겁쟁이. 하지만 역시 하울이야. 하야오 감독의 하울과는 다르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하울의 신비감과 아름다움은 어느 정도 묻혀있다. 그건 하울의 내면의 진실을 다이애나 윈 존스가 막판까지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끝까지 하울을 믿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하울은 거짓말 쟁이다. 역시 강한 걸. 강하면서. 착하면서. 올바르면서. 그렇지 않다고 자기 최면을 건다. 하울은 그렇게 자기 자신의 어둠과 분노와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고 똑바로 보면서 걸어가려고 한다. 할머니의 마음을 가졌던 소피. 맏딸은 저주 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자신의 불행을 탓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소피를 꾸짖어줄 유일한 사람은 하울뿐이며 하울을 곤란하게 만들 사람도 소피뿐이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가끔은 싸우기도 하며 평생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것도 사랑이다. 역시 사랑은 위대하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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