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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놀 천사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을 고를 때 특정한 기준은 없지만, 전작이 좋았던 작가를 우선순위에 올려놓는다.
그게 아니면, 리뷰가 좋은 책을 본다.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책들이 다가가기 쉬운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단편집이라면 살짝 손을 내려놓는다. 두 세번 인기작가의 단편집을 골랐다가 이해불가였던 경험이 박혀있다.
이해력이 짧아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읽다가 분위기 좀 탔다 싶음 '끝' 이다.
짧은 글이지만 오래 남는 글도 당연히 있을 것이라는게 요즘 생각.
책 읽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면, 기대해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물음에서 읽기 시작했다.
1편 저녁놀 천사를 읽고 났을 때 쯤 일본 문학 특유의 냄새가 났다.
정확하게 딱 꼬집어서 글로 설명하기엔 어렵지만
보글보글 된장찌개와 다른 미소된장국. 같다고나 할까?
히로시를 꾸짖고 나서 함께 먹을 저녁을 준비하는 할아버지의 흐뭇한 얼굴 ' 라던가
머지않아 철거될 전찻길은 어딘지 멍청하니 얼이 빠져 있었다' 라는 문구도,
피식_책을 읽는 도중 왠지 모를 웃음이 배어나오게 만든다. 내용은 그게 아닌데도...
그저 철교 아래에서 올려다본 하늘의 새파란 빛이 가슴에 파고 들었다.
하늘색깔이 콘크리트 바닥에 비치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색깔은 눈의 착각일 뿐이고,
이세상은 오래된 영화처럼 흑백으로만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p73
히로시의 생각이 참 예쁘면서도, 무언가 담고 있는 듯한 이 문장들이
아사다 지로라는 이름을 내게 새겨놓고 있었다.
6편의 단편 중 정 가운데에 있는 <특별한 하루>는 물컹 거렸다.
정년을 코앞에 두고 퇴직하는 노년, 삼십년을 넘게 한 직장에 몸담고 있던 그가 떠난다.
평소와 다름없이 특별하지 않으려고 되뇌이고 되뇌이지만, 역시 쉽지 않은 일.
나는 문득 이입을 해본다. 매일 같이 하던 출근과 퇴근이란 것도 이제 없을 것이다.
늘 소원하던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료들과 함께 존재하던 그 공간에 내가 없어진다. 지금이 그 시간이라면
평소와 다름 없이 일과를 마치고 아무런 내색 없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책 속에서 처럼 '자네 잘해 왔네!! ' 라고 한마디 듣는다면
감정적인 나는 무너질 것이다. 고마움을 표하고 싶을 것이고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이것이 마무리라 생각했었다. 내 작은 생각의 폭이란 참. 하하하_
초거대 혜성과 지구의 충돌로 끝나는 이 단편은 감성에 풍덩 잠겨있던 나를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전세계 사람들이, 일본의 모든 사람들이 이날이 올꺼란 걸 알고 있으면서 한결같이
아무일 없는 듯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니 이런 결말은 무수히 많은 재난 영화중에도 없었던 듯 하다. 새롭다.
초조함이나 긴장감으로 포장되어 있지 않지만 술술 넘어간다.
단편이지만 무엇하나 빼 놓은 것 없다. 아사다 지로 작가의 다른 책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동한다.
잔잔하게 독자를 잡고 있는 힘이 느껴진다.
일본문학을 좋아한다면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