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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서 나가라 - 상
무라카미 류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6년 4월
평점 :
이것은 미래 소설이다. 소설 배경이 2010년~2011년인데 왜냐고? 자세히 보면 발표된 시기가 10년 넘었고 우리나라에는 2006년에 나온 듯하다. 내가 늦게 읽은 거다.
사건이 쇼킹하다. 경제부흥에 실패한 어정쩡하고 무기력한 일본정부. 미국과 중국이 대결모드가 아닌 서로 잘 살아보자는 상생적 역학관계. 동북아 정세에서 북한마저 살짝 화해모드에 편승하는 묘한 분위기. 이런 틈바구니에서 북한이 인구 100만의 후쿠오카를 따먹어 버린다.
9명의 특공대가 후쿠오카 돔구장에 침투하여 프로야구 개막전 관람 인파 수만명을 인질로 삼고 상황을 끌어가는 사이 후속적으로 도착한 5백명 북한 군대가 후쿠오카를 완전 점령한다. 후쿠오카현 지사와 시장은 언론에 “후쿠오카는 일본으로부터 독립한다.”고 발표하게 된다.
초동 대응에 실패한 일본정부는 도쿄 또는 열도 전역으로 침공이 확산될까 두려워 아무런 강경대책을 취하지 못한다. 그 사이 북한으로부터는 12만 대군이 후쿠오카 상륙을 위하여 해상으로 몰려오고 있다.
북한은 그 군인들을 ‘체제에서 이탈한 반란군’이라 규정하며 외교적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미국도 중국도 심지어는 한국도 (실익이 없으므로) 이를 일본 국내 문제로 취급하여 묵인한다.
묘한 것은 시간이 감에 따라 변해가는 후쿠오카 시민들 의식. 일본정부 경제정책에 실망을 거듭하다가 국가의 보호로부터 버려진 후쿠오카 시민들. 역사적으로 외세 침략이 없어 자국 내 전쟁 역사가 없는 이들은 상황이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지만, 한편의 인간들은 너무나 계산이 빨라 ‘정부로부터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으니 오히려 이것이 경기 활성화 기회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기도 한다. 갑자기 늘어날 12만명 의식주는 소비활성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이 사건은 결국 해결된다. 그러나 누가 해결하였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그것으로 후다닥 결말을 맞게 되지만 이 소설은 장장 1천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다. 만화같은 흡입력을 자랑한다.
어떤이는 소설 따위는 읽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약간 반대인 사람이다. 사람마다 몽상가적이던지 실리탐구적이던지 감성적이던지 학구적이던지 뭐 읽는 취향이야 다양할 수 있겠지만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 연구결과를 대부분 나열하고 뚜렷한 대안이 없어 보이는 데도 그것이 자신의 위대한 주장인 양 설득하려는 불완전한 인쇄물’보다는 소설이 낫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냄새나는 인간사를 빼놓고 갈 수 없다. 그래서 좋다. 또한, 소설은 공감과 납득의 상황을 깔고 설득력 있게 밀어붙이려면 지식 전달이 필요한 경우가 허다하므로 지적인 탐구를 원하는 사람에게도 건질 게 없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현실적으로 꼬린내나게 만들어 내는 그들을 우리는 작가라 부른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것 중 일부는 ‘고전’으로 추앙받기까지 한다. 위대한 작가란 위대한 뻥쟁이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다시 돌아와서.
‘반도에서 나가라.’는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 즉 ‘지식전달 없는 독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주워 담을 지식이 넘치고 남는다. 작가 혼자가 아니라 마치 거대한 연구소가 방대한 취재와 구성에 동원된 것 같다.
소설 속 인간사? 이것도 장난 아니다. 어쩌면 코믹스럽기까지한 상황에 던져진 불운의 두 그룹. 그렇다 문자 그대로 트래직코믹이다.(익스트림의 ‘트래직코믹’이 이유 없이 흥얼거려진다. 그건 머피의 법칙 비슷한 로맨스팝송이라 이 상황과는 맞지 않는데...)
비극의 한 그룹은 개방사회로부터 단절되게 살다 갑자기 거대한 자본주의 무역도시를 휘어잡은 북한점령군. 눈물 절절한 개별적 인간사 장난 아니고, 무서운 총칼을 지녔음에도 과거 제국주의 일본군과 달리 인간으로서의 건전한 예의를 갖춘 모습은 점령당한 시민들에게 차라리 감동을 주기도 한다.
또 한 그룹은 사회로부터 격리당한 노숙자들. 대부분 10대이며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범죄자들이다. 세계 각국의 살상무기를 수집하거나 맹독성 파충류를 기르거나 폭발물에 천재적인 관심을 가지거나 친족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이코, 소시오패스, 뭐 그런 완전 말종들이다. 그들은 정상적인 사회와 쌍방 거부하며 소외받고 살았겠지만 작가는 스토리를 통하여 그들 개별적 인간사도 나름 이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정부가 해결할 엄두도 못내던 이 대단한 시츄에이션이 결국 이들의 장렬한 희생으로 해결된다.
더불어 씨호크호텔과 후쿠오카돔이 박살난다. (후쿠오카돔 왕정치기념관에서 나에게 내용을 알 수 없는 설문지를 건네던 코스프레 소녀들이 생각난다. 후쿠오카돔과 연결되어있던 호텔은 힐튼이 아니었던가? 거기 묵었던 것 같은데 소설에서는 씨호크로 나온다. 뭐가 맞는가?)
와... 이거 내 목표 다섯줄 서평이 아니라 완전히 길어졌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재미있다. 꼬릿말잇기식 말장난만 늘어놓다가 어느새 진지모드로 돌입했다가 또 어느새 말장난으로 돌아와 마무리 짓기도 하는 무라카미류식 입담은 잘 읽어보면 깨알같이 구석구석 숨어 있다.
햇빛에 점점 녹아드는 하드 작대기 빨듯 쪽쪽 달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