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루머의 루머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5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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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하게 느껴지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나는 한 친구에게서 "너 많이 변한 것 같아...'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난 후, 나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말은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내게 정말 충격적인 말로 기억된다.
당시엔 그 말을 듣고 참 겁이 났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에게 나에 대해 그런 말을 하고 다니면 어쩌지...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춘기였을까... 언제부턴가 스스로 '내가 정신적으로 뭔가 좀 변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즈음, 그 친구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내 마음을 그냥 그대로 내보인 것 같아 더 부끄럽고 겁이 났던 것 같다.
물론 내 경우는 '루머'가 아니었다. '진실'이었다. 스스로 인정했던 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지금까지 생각나는 건, 나 아닌 타인이 나에 대해 평가를 내렸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내게 직접적으로...
난 그 진실에 쓸데없는 참견의 살이 붙고 붙어 당시엔 '소문'이라 칭했을 '루머'가 되어 친구들 사이를 어슬렁거릴까봐 더더욱 두려웠다.
우리는 이처럼 어린 나이에도 루머와 함께 지내왔다. 루머의 무서움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타인을 향해 잔인한 미소를 머금은 루머를 보면서는 어쩐지 재미있어하고 외려 루머를 응원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부끄럽게도 덥석!!! 그 날카롭게 선 이빨로 누군가를 물어뜯고 또 상처를 내기를 은근히 바라며 살아온 것 같다...  

 

우리가 지인들과 이야기 할 때 빠뜨리지 않고 하는 이야기는 모두가 다 아는 공인 특히 연예인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바로 '심심풀이'라는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갖다 붙이면서 말이다.

그동안 내가 사람들과 함께 해 온 수많은 이야기들이 루머임을 알면서도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내 고통이 아니니까...남들도 다 하는 이야기인데 뭐...재밌잖아?'라는 생각으로 루머에 날개를 달아주며 살아왔음에 너무도 부끄러워지는 오늘이다.
지금에 와서『루머의 루머의 루머』에서 '해나 베이커'가 경험했을 '루머'로 인한 상처를 조금이나마 내 고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면 여전히 난 그렇게 부끄러운 '루머의 응원단'으로만 살아왔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깨달았을 때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 또 루머의 루머의 루머까지...
루머가 차지한 영역은 더욱더 커지고 커져 결국 진실이 자리할 공간은 사라지고 말았을지 모르지만...

아니, 우리의 늦은 깨달음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목숨을 통해 진실을 이야기하려 했을 안타까운 생명이 여럿 존재했음은『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작가 '제이 아셰르'까지도 뉴욕타임즈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니 부인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그렇게 우리의 가볍디가벼운 입으로 인해, 루머를 배부르게 먹이고 살을 찌운 우리의 열성적 응원으로 인해 목숨 바쳐 진실을 이야기하려 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부끄럽고 미안하고, 염치없으나 안쓰럽다.
이는 연예인과 같은 공인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루머의 날카로운 이빨에 물려 고통스러워 할 그 누군가가 바로 내가 될 수도 있고 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또 내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조금이라도 빨리 루머로 인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작가 '제이 아셰르'가 한국이 비록 가장 활발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더라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더 많은 사회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나의 일이다.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또 그 내일도... 오늘의 부끄러움을 잊지 말자는 어설프지만 굳은 다짐을 한다.
순간 언제그랬냐는 듯, 심심풀이라는 핑계를 단 입을 또 나불거릴지 모를 일이기에 이곳에라도 이렇게 생각의 증거를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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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마음을 만지다 - 시가 있는 심리치유 에세이
최영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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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가 마음을 만지다...’ 참 멋진 말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내보이기를 참 많이도 꺼려했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내 마음을 만져주기만을 마냥 기다려왔다.
과거 누군가에게 용기내어 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솔직히 그 사람에게서 큰 위로를 받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뭐랄까... 그냥 그 상황을 잠시나마 모면해보려는 진심없는 위로로 느껴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까지도 고민이 될 때가 있었다.
이럴 땐 오히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게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마음과 마음이 제대로 만나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그런 내게 이 책이 왔다.

그동안 난 한번도 시집을 내 돈주고 사본 적이 없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아 본 기억밖엔... 그 땐 시집을 받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시인의 생각이 잘 전해지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눈으로 시를 볼 때와 소리로 시를 낭송할 때의 차이를...
이 책에서 작가가 시를 직접 소리내어 읽어보라는 대목이 나왔을 때 난 집에 있지 않았다.
밖에서 그부분을 보곤 눈치를 봐가며 조심스레 소리내어 시를 읽어보았다.
시를 소리내어 읽어본 게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아 괜히 혼자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데...정말 목소리의 힘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그냥 눈으로 보고 말았을 때와 달리 시인의 생각이 마치 내 생각인 듯 그 마음이 잔잔히 전해졌다.
시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 괜한 자격지심으로 힘들어하며 무엇엔가 시원하게 속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던 내 일상이 이 한 권의 책으로 바로 바뀔 수만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제 조금은 가능할 것 같다.
우선은 소리내어 말하고 또 내 마음을 내 목소리로 듣고 싶다.
내가 내 마음도 모르는데 어찌 남이 내 마음을 알아주겠는가...
방관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의지를 가질 때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이 꼭 나를 향해 내뱉는 소리 같았다.
이제 스스로 나서야 할 때인 것 같다.
마음을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말아야겠다.
그래야만 타인도 내 마음을 만져주는 법을 알 수 있을테니...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작가가  어떤 시로 어떻게 위안을 받게 되었는지 그다지 상세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었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한 뒤 마지막에 시 한 편이 덩그러니 놓여있어 알아서 생각하시오...라는 느낌.
이제 막 시로 마음을 달래보려는 나같은 초보자들에게 조금은 당혹감을 안겨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허나 이 또한 작가의 깊은 생각이 담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편의 시를 읽고 모든 사람이 같은 감상을 가질 수는 없을테니 독자들에게 스스로 생각해보고 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일지도...

휴일엔 서점에 가서 시집을 살펴봐야겠다.
그리고 내 마음과 너무도 같은 마음을 가진 시집 한 권을 손에 들고 설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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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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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 훗카이도, 크리스마스 즈음 남쪽으로 5,6도 기울어진 '유빙관'이라 불리는 한 저택에 집주인의 지인들이 초대된다.
그리고 그날 밤, 이 저택에서 설명하기 힘든 밀실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검붉은 표지가 불러일으키는 강한 인상과 '기울어진 저택'이라는 재미있는 소재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충분히 어필을 할 만하다.
하지만 '미스터리에 자신이 있는 독자라면,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라는 띠지에 적힌 문장에 두근반세근반 기대를 하고 읽어서일까?
추리소설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던 나에게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는 조금은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우선은, 내 딴에는 일본 소설을 많이 읽어왔다 생각했고 일본 소설은 사람 이름이 헷갈린다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난 아직 그런 경험은 없었다 생각해왔는데 왜인지 이 책은 정말이지 사람들 이름이 잘 기억되지 않았다. 
등장인물이 소개된 페이지를 표시해 두고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는지 모르겠다.
책을 절반이나 읽었을까...부끄럽지만 그때야 조금은 사람들 이름이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내가 힘들었던 건 '저택'이라는 말에 참으로 어울리게 저택의 방이 총 15개나 됐고 그곳에 투숙한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기억해야했다.
그리고 저택의 구조나 살인사건 현장의 모습 등이 친절하게 소개된 그림들까지도 잊지 말아야 했기에 내 머리속은 과부하가 걸린 듯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동안 너무 편안한 책들만을 골라 읽어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오래 전에 읽은 추리소설의 잔상이 떠올랐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책에서 1982년이라는 내용이 있었지만 배경이 그러려니...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정말로 일본에서 이 책이 1982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거의 30여 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어쩐지 좀 고리타분하달까?
옛날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어릴 적 TV에서 봐 왔던 명탐정이 등장하니 할 말 다했다.
내가 이 책에서 특히나 실망했던 부분은 그 명탐정의 등장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책 소개를 보고 명탐정의 등장을 기대했지만 우리의 명탐정은 세월아 네월아 하며 끈질기게도 나타나질 않았다. 
거의 소설의 후반에 가서야 모습을 드러내더니 어찌된 영문인지 그의 활약도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특히 아쉬운 점은 명탐정 뿐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 중 강한 매력을 지닌 인물을 끝까지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변형 건물이라는 특이하고 재미있는 소재와 그 안에 여러가지 트릭으로 흥미를 유발시킨 점은 칭찬할 만했지만 쌩뚱맞게 밝혀지는 범인과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범행 동기는 조금은 코믹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범인의 자세한 살인 과정의 설명은 400여 페이지가 넘는 책의 분량에 비해 너무도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이었고 밝혀진 범인 앞에 너무도 태연한 사람들 때문에 소설의 재미가 반감된 느낌이었다. 

이 책을 거의 2주를 읽었다 말았다 했다. 올해들어 읽은 추리소설이 몇 편 되는데 가장 오랜 시간동안, 가장 어렵게 한 권을 읽어내려간 것 같다.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는 추리소설의 경우 적어도 이틀 안에는 완독했던 내 독서 패턴에 어울리지 않은 책이었다.
작가 '시마다 소지'가 이 소설을 만들기 위해 엄청 고심을 했으리라는 생각은 해볼 수 있겠다.
'기울어진 저택'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이용했다는 사실과 그 안에 나로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여러가지 기발한 장치들을 만들어낸 작가의 노력에는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어쩐지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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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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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날 눈물 짖게 만든 소설 '리진'_
정말 얼마만에 느껴보는 감동인지...
아니, 지금 만큼은 다시 또 내게 이런 감정을 갖게 할 소설은 없을 것만 같다.
처음 책의 제목을 보고 무슨 제목이 이러나 싶었지만 책장을 덮은 지금 '리진' 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녀의 인생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려온다.
 
사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faction'이 요즘 유행이라지만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소설 중에 이런 'faction'은 드물었다.
단지 '리진' 뿐 아니라 리진이 어머니처럼 생각한 '명성황후', 개화기 조선의 궁중무희 리진을 사랑한 프랑스 공사 '콜랭', 오누이처럼 함께 자란 '강연' 등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마치 지금도 내 주변 어딘가에 살고 있는 듯...
특히 '리진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느 것에도 견줄 수가 없다'는 강연의 마음이 내 마음인 것 마냥 괴로웠다.
소설을 위해 백 년 전 실존 인물인 리진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작가가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고 했을 때, 내 가슴도 쓰라렸다.

소설을 읽고 참을 수 없이 공허한 마음으로 네이버 검색창에 '리진'을 쳐 보았다.
검색 중 KBS1 TV '한국사 傳'이라는 프로그램에서 2007년 6월 23일 '조선의 무희, 파리의 연인이 되다. 리진'이라는 제목으로 실제 리진의 삶을 조명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보기를 통해 그녀의 삶을 화면으로 볼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장동건'처럼 잘생긴 '남정네'도 아닌 이 '리진'이라는 한 '여인'에게 더욱더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가슴 속 한 구석이 커다랗게 구멍이 난 그 심정을 리진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더 말해서 무엇 하랴!!!
어서 가까운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손에 들고 책장을 열어보길 바란다.
괴롭고, 쓰라리고, 안타까운 마음…….
이를 다시 느낄 생각을 하니 조금은 망설임이 들지만 지금의 여운이 조금 가실 즈음 나도 다시 한번 리진을 만나봐야겠다. 

'자, 이제 백 년 전의 한 여인을 백 년 후의 이 세상으로 내보낸다. 리진……당신이 사람들 속에 사랑스럽게 섞여 다시 잊혀지는 일 없이 현재형으로 존재하게 되기를 바란다.' 라고 했던 작가의 바람이 이루어 진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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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도시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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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도시'라는 예쁜 제목, 그리고 내 손에 책을 받아든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샛노란 표지_

누가 봐도 첫인상은 그저 예쁘고 기분 좋기만한 책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분위기를 풍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모서리에 내몰린이들의 삶을 조명했다는 사실은 주인공들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그들 스스로 희망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며 감동을 주는 소설이라 생각했다.

역시나 '천사들의 도시' 속에는 희망이 있었다. 그동안의 소설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희망이...

 

'어렵고 소외된 이웃' 이라 하면 '가난하거나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라는 매우 단순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던 나로서는 이들의 삶은 곧 '충격'이었다.

'천사들의 도시, 그리고 일주일, 인터뷰, 지워진 그림자, 등 뒤에, 기념사진, 여자에게 길을 묻다' 각 단편들은 작가가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소재로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참 궁금하게 만든다.

한국어 강사와 그녀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입양아, 에이즈에 감염된 여인, 한국으로 시집온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욕심의 결과로 노숙자자 된 한 남자, 불운한 가정사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여선생과 왕따 제자 그리고 군대에서 겪은 일로 힘겨워하는 여선생의 애인,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여배우와 누명 쓴 한 남자,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겪은 여인과 그녀와 동거한 남자 또 그 남자를 짝사랑한 거인증에 걸린 여자...등...

책을 읽는 내내 나도 그들처럼 어둡고 우울했다. 그러나 끝까지 그들 주인공들은 자신에게서 어떤 희망도 찾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넌 나보다 낫지 않냐... 지금 네 고민은 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고로 넌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라는 식의 희망을 내게 전달하려는 듯 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스스로 희망을 발견하고 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것을 예상한 것과는 달리 그들의 고통 속에서 내게 작은 희망의 싹이 튼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내 희망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럽지만...

 

개인적으로 그 속에서 가장 맘에 드는 단편은 한국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국어 강사를 하고 있는 '나'와 한국에 머물고 있는 입양아 '너'의 이야기인 '천사들의 도시'이다. 

'나'가 '너'에게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저녁 7시쯤, 우리를 비추던 태양이 한 발 물러서 천천히 지구 반대편으로 공간 이동을 할 때면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린다고 너는 말하곤 했다.」

라는 식의 이인칭 소설이라는 점이...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이런 식의 글을 써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나 이 책의 장점은 주인공들에게서는 절대 찾기 힘든 단어 하나하나의 생명력과 아름다운 표현일 것이다.

작가의 이런 능력은 그들의 삶을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만큼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의 삶 그대로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어떤 다른 설명도 필요없다. 단지 작가가 표현한 그 단어 하나로 쓸쓸히 모퉁이에 서 있는 그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제목이 '천사들의 도시'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답게만 여겨지는 '천사들의 도시'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소설에서 진정 천사는 찾을 수 없다.

지금도 솔직히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많은 책들이 그렇지만 특히나 이 책은 한 번 읽는 것으로는 그 정체를 완전히 파악하기는 힘들 것 같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작가가 직접 '타자'가 되어 그것에서 굳이 어떤 희망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냥 그들 감정을, 그들의 인생을 그대로 표현하려 한 점이 마음에 든다. 그만큼 인위적이지 않은 각 단편들 모두 나에게 많은 생각의 이유를 던진다.

복잡한 심정으로 '지금'을 살고있는 나에게 조금 더 무거운 마음을 갖게하긴 했으나, 정말 얄밉고 이기적이게도 타인의 고통으로 작은 희망을 엿보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그만큼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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