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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ㅣ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일본 훗카이도, 크리스마스 즈음 남쪽으로 5,6도 기울어진 '유빙관'이라 불리는 한 저택에 집주인의 지인들이 초대된다.
그리고 그날 밤, 이 저택에서 설명하기 힘든 밀실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검붉은 표지가 불러일으키는 강한 인상과 '기울어진 저택'이라는 재미있는 소재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충분히 어필을 할 만하다.
하지만 '미스터리에 자신이 있는 독자라면,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라는 띠지에 적힌 문장에 두근반세근반 기대를 하고 읽어서일까?
추리소설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던 나에게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는 조금은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우선은, 내 딴에는 일본 소설을 많이 읽어왔다 생각했고 일본 소설은 사람 이름이 헷갈린다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난 아직 그런 경험은 없었다 생각해왔는데 왜인지 이 책은 정말이지 사람들 이름이 잘 기억되지 않았다.
등장인물이 소개된 페이지를 표시해 두고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는지 모르겠다.
책을 절반이나 읽었을까...부끄럽지만 그때야 조금은 사람들 이름이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내가 힘들었던 건 '저택'이라는 말에 참으로 어울리게 저택의 방이 총 15개나 됐고 그곳에 투숙한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기억해야했다.
그리고 저택의 구조나 살인사건 현장의 모습 등이 친절하게 소개된 그림들까지도 잊지 말아야 했기에 내 머리속은 과부하가 걸린 듯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동안 너무 편안한 책들만을 골라 읽어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오래 전에 읽은 추리소설의 잔상이 떠올랐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책에서 1982년이라는 내용이 있었지만 배경이 그러려니...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정말로 일본에서 이 책이 1982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거의 30여 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어쩐지 좀 고리타분하달까?
옛날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어릴 적 TV에서 봐 왔던 명탐정이 등장하니 할 말 다했다.
내가 이 책에서 특히나 실망했던 부분은 그 명탐정의 등장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책 소개를 보고 명탐정의 등장을 기대했지만 우리의 명탐정은 세월아 네월아 하며 끈질기게도 나타나질 않았다.
거의 소설의 후반에 가서야 모습을 드러내더니 어찌된 영문인지 그의 활약도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특히 아쉬운 점은 명탐정 뿐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 중 강한 매력을 지닌 인물을 끝까지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변형 건물이라는 특이하고 재미있는 소재와 그 안에 여러가지 트릭으로 흥미를 유발시킨 점은 칭찬할 만했지만 쌩뚱맞게 밝혀지는 범인과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범행 동기는 조금은 코믹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범인의 자세한 살인 과정의 설명은 400여 페이지가 넘는 책의 분량에 비해 너무도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이었고 밝혀진 범인 앞에 너무도 태연한 사람들 때문에 소설의 재미가 반감된 느낌이었다.
이 책을 거의 2주를 읽었다 말았다 했다. 올해들어 읽은 추리소설이 몇 편 되는데 가장 오랜 시간동안, 가장 어렵게 한 권을 읽어내려간 것 같다.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는 추리소설의 경우 적어도 이틀 안에는 완독했던 내 독서 패턴에 어울리지 않은 책이었다.
작가 '시마다 소지'가 이 소설을 만들기 위해 엄청 고심을 했으리라는 생각은 해볼 수 있겠다.
'기울어진 저택'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이용했다는 사실과 그 안에 나로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여러가지 기발한 장치들을 만들어낸 작가의 노력에는 박수를 쳐 주고 싶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어쩐지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