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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 최인자 옮김, 제인 오스틴 / 해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 '오만과 편견'을 본 게 전부였던 나,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오만과 편견'을 지금까지 한번도 책으로 접해보지 못했다는 게 사실 부끄러웠다.
하지만 하루하루 새로이 출간되는 예쁘장한 책들은 언제나 내 시선을 사로잡았고 주로 자극적인 소재만을 찾아 읽던 나의 독서 습관으로 인해 고전문학에 쉽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았다.
이 문제로 갈등하고 있던 순간, 마침 그동안 가까이 하지 못했던 '오만과 편견'에 내가 원하던 자극적인 단어 하나가 더 붙은 왠지 어색한 제목의 책의 출간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하하. 이 얼마나 끌리는 제목인가.
그 유명한 고전 '오만과 편견'에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단어 '좀비'는 왜 갖다 붙인걸까?
이 제목 하나만으로도 오만과 편견을 읽어보았건 읽어보지 않았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키 충분했다.
처음 책표지를 봤을 때 이 책은 띠지가 없나보다 생각했는데 책을 받고보니 표지속 여인의 붉은 눈동자 아래가 전부 큰 띠지였다.
이 띠지를 벗기니 충격적인 표지 속 여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서둘러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첫 느낌이 뭔가 이상하다.
지금까지 내게 있어 책을 읽을 때 만큼은 '번역'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어떤 책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할 때, 나는 뭐가 이상하다는거지...라는 생각으로 무심코 넘기기 일쑤였고, 사람들이 옮긴이를 가려가며 책을 읽을 때에도 나는 정말 사람들의 그런 까탈스러움(?)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번역'이라는 것이 왜 책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방해를 하건지, 지금까지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솔직히 번역이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물론 원작이 1813년에 출간되었고 그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와 지금의 언어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시대와 언어, 그리고 문화가 다르기에 내가 느낄 이질감은 충분히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바로 옮긴이를 찾아봤더니 엄청난 인기를 끌고있는 다른 책들도 많이 번역하신 분이다.
성의없는 번역의 문제라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이건 나의 문제인가?
오랜만에 접한 고전에 대한 거부감이 번역에 대한 거부감으로 다가온건 아닐까.
우선 이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작을 읽어보는 일이 시급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원서를 읽는 것이겠지만 이는 내게 너무 큰 노력을 요구할 것 같다.
첫 느낌에 관해 너무 길게 내 생각을 끄적였다.
이 책은 내가 영화로 봤던 '오만과 편견'에 그냥 좀비가 끼어들었을 뿐이었다.
등장인물도, 전체적인 내용도, 내가 알던 '오만과 편견'과 같았다.
너무 원작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던 것인지 내가 원한 좀비의 역할이 그다지 크지 않아 아쉬웠다.
'제인 오스틴'은 영국 BBC에서 '지난 천년간 최고의 문학가'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패러디로 이런 분의 명예를 훼손시켰을 때 생길 수 있는 저항에 미리 겁먹고 조금은 소심하게 좀비를 투입시킨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과감한 좀비의 역할을 원했던 나의 기대와는 아주 많이 달랐다.
그리고 주인공 엘리자베스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무술 능력에 관한 묘사는 솔직히 "풋!"하고 웃음이 날 정도였고 더 심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치하다는 느낌이었다.
패러디인 만큼 이 책을 읽는 이들의 견해는 참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논란의 여지도 충분하고...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원작을 많이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소재인 '좀비'를 투입시켰다는 점에서는 작가의 상상력과 노력이 엿보였다.
또한 자칫 식상하고 지루하다 느낄 수 있는 고전문학에 파릇파릇한 신선함과 함께 눈에 띄는 제목, 소재로 읽는이들에게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는 만족할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이 책이 제인 오스틴을 사랑하는, 그리고 오만과 편견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과연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