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수집가 - 어느 살인자의 아리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정창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를 읽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리게 되고, 소설을 읽는 내내 짙은 향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향수'를 읽으면서 코가 상당히 피곤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두통까지...
만약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와 같은 능력이 내게 존재한다면 난 아마도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았을 것이다.
 
소설 '향수'와 영화 '향수'의 강한 인상 덕분에 그 후 비슷한 소재의 책들엔 저절로 관심이 가게 되었던 것 같다.
우주의 미세한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엘리아스를 주인공으로 한 로버트 슈나이더의 '오르가니스트'부터
세상의 모든 소리를 가진 루트비히의 이야기를 다룬 트라아스 데 베스의 '소리수집가' 까지...
'소리수집가'를 처음 접했을 때 강렬한 표지에 이어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책 소개는 특히나 이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향수'의 향이 내게 너무 짙게 각인된 탓일까...
'향수' 이후 비슷한 소재의 작품들은 모두 내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먼저 이 책은 루트비히를 일인칭으로 작성된 세 권의 노트로 나뉘어져 있다.
허나 이 노트를 작성한 것은 루트비히가 아닌 슈테판 신부.
슈테판 신부가 작성한 노트인데 왜 그 자신이 아닌 루트비히를 일인칭으로 기록했을지는 책을 읽고 판단하시길...
 
이 세 권의 노트에 등장하는 루트비히가 이 책의 화자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슈테판 신부의 노트를 발견한 위르겐 신부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는 서문을 시작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서문 뒤에 세 권의 노트로 루트비히의 삶이 드러나고 마지막에 다시 위르겐 신부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솔직히 뒷 페이지들과 구분된 색상의 종이에 인쇄된 위르겐 신부의 서문은 이 책에 대한 기대를 더욱더 키운 게 사실이다.
내게 엄청난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어서 빨리 뒷 페이지로 넘어가고픈 충동을 일으키는 작용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서 '용두사미'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가슴 시린 로맨스 스릴러'라는 소개말도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아니, 솔직히 이 책이 스릴러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특이한 능력을 지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
 
루트비히의 살인이 어쩔 수 없는, 읽는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살인이기를 바랬던 것과 달리 그 살인의 정당성에 의심이 갔고 그들의 사랑 이야기도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물론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누구나 궁금해 할만 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는 작가의 능럭을 의심할 여지가 없고 주인공의 삶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배신감을 느낀 기분이다.
천재적인, 그리고 그의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악마에게 영혼을 팔 정도의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루트비히의 재능에 어울리지 않게, 소설은 그다지 치명적인 매력이 없었기에 허무하기도 했다.
 
요즘 내가 현실적인 사랑과 소설에 더 흥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일까.
'소리수집가'에 내가 기대했던 그 무엇...
그 무엇을 알고 싶었는데 깨닫지 못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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