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유의 The Iliad or the Poem of Force를 떠올렸다. 전쟁과 힘, 그리고 억압의 구조를 냉철하게 분석한 그녀의 글은 여전히 힘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을 정확히 짚어낸다. “힘은 승자와 패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파괴한다”는 그녀의 통찰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베유는 Gravity and Grace에서 "고통은 영혼의 중력이다"라고 말했다. 고통은 단순히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구성하는 필연적인 조건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고통을 은총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은총이란 무엇인가? 그녀는 이렇게 썼다. "은총은 고통의 중심에서 신성과 연결될 수 있는 경험이다." 즉, 고통은 인간에게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하고, 이를 초월하는 길로 안내한다. 고통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더 높은 차원의 존재와 합일을 경험하며, 궁극적으로 자신과 세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다. 베유에게 은총은 단순히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신성에 닿는 것이다.
힘은 무엇인가? 베유는 The Iliad or the Poem of Force에서 "힘은 인간을 파괴하고, 그들의 인간성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스페인 내전에서 무정부주의자 부대에 합류했던 그녀는 전쟁의 비극적 실상을 직접 경험했다. 승자와 패자가 모두 힘의 논리에 종속되고, 힘의 작동은 인간 관계를 지배와 종속으로 재편했다. 그녀는 일리아스 속 트로이 전쟁을 분석하며, 힘이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어떻게 압도하는지를 통찰력 있게 그려냈다. 이 논의는 한나 아렌트의 권력 개념과 흥미롭게 대조된다. 아렌트는 권력을 공동체의 협력과 합의를 통해 형성되는 긍정적인 힘으로 보았다. 반면, 베유는 힘을 본질적으로 억압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정의했다. 아렌트에게 권력은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베유에게 힘은 인간 존엄성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였다. 이러한 차이는 두 철학자의 삶과 경험, 그리고 그들이 바라본 현실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혐오와 차별은 베유의 '주의(attention)' 개념이 오늘날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상기시킨다. 혐오는 고통을 외면하고, 차별은 타인의 존엄성을 부정한다. 베유는 “진정한 사랑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의란 타인의 고통을 직시하며,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다. 현대의 '주의'는 단순히 관심을 끄는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혐오를 목격했을 때 침묵하지 않는 실천적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온라인 연대와 커뮤니티 형성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베유의 철학은 그녀의 삶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그녀는 공장에서, 전쟁터에서, 그리고 책상 앞에서 고통과 힘의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녀의 공장 노동 경험은 노동의 소외와 고통이 억압적 구조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했고, Labor Journal은 이러한 고통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그녀는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타인의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인간 존엄성 회복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녀의 사유는 단순히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녀의 실천은 때로 그녀를 파괴와 은총의 경계로 몰아넣었다.
혼란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비상계엄령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의 무게 속에서, 베유의 삶과 철학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힘의 논리를 거부하고, 타인의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며, 은총으로 나아가는 길은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베유는 그녀의 삶을 통해 말한다. "은총은 힘의 정점에서 드러난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힘에 굴복하여 인간성을 상실할 것인가, 아니면 베유의 가르침처럼 고통에 맞서 연대하고 은총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