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의 기억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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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의 먼 산의 기억을 펼치며 처음 느낀 것은, 이 책이 그의 삶 자체라는 점이었다. 글과 그림, 두 갈래의 길로 나뉘었던 그의 예술적 여정이 하나로 합쳐진 흔적이 페이지마다 숨 쉬고 있었다. 소설가 파묵과 화가 파묵이 서로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마침내 화해하는 과정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글쓰기다. 이와 같은 열정으로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다른 사람이 되었으리란 걸 이제 깨달았다. P. 32


50년 전, 소설가 파묵은 화가 파묵을 묻어버렸다. 물감과 붓을 내던지고, 그림을 조롱하며, 자신은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 어딘가에는 항상 화가의 유령이 존재했다. 어느 날, 다시 물감을 손에 쥔 그는, 마치 오랫동안 잊혔던 자아와 조우하듯이 노트 위에 붓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 먼 산의 기억이다. 



오르한 파묵의 이 시각적 노트는 그의 글과 그림이 하나로 엮여 탄생한 예술적 기록이다. 도시의 구조와 부드러운 색감, 아치와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따뜻하면서도 고독한 그의 시선을 담고 있으며, 노트에 적힌 문구들은 그림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작동하는 상상력과 사색을 드러낸다. "Nights of Plague"라는 제목은 그의 창작 세계의 시간성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확장하며, 기억과 상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그의 예술적 비전을 완성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그 풍경을 둘러싼 시간과 감정, 그리고 그의 꿈과 사랑을 담아낸 하나의 작은 우주처럼 보인다.


파묵의 손길은 자유롭고 충동적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낙서를 하듯 노트의 줄을 벗어나기도 하고, 작은 글씨와 큰 글씨가 뒤섞였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경이로웠다. 작은 산과 들, 인형 같은 집과 사라지는 거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새의 눈. 그의 그림은 단순히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담은 일종의 "감정 지도"처럼 느껴졌다.


이 페이지는 오르한 파묵의 일상과 내면을 담아낸 시각적 기록으로, 그의 섬세한 관찰력과 기억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터키의 풍경을 담은 수채화와 그 주변을 채운 글씨들은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대화처럼 느껴진다. 그림 속 풍경은 단순히 도시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가 바라본 삶의 아름다움과 고독, 그리고 이를 초월하려는 그의 욕망을 담아낸 것처럼 보인다. 파묵은 풍경을 통해 자신을 잊고, 또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며, 이 순간을 영원히 붙들어두려는 듯한 시도로 이 페이지를 완성했다. 글과 그림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며 파묵의 내면세계를 한층 더 풍부하게 드러낸다. 이 노트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그가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를 시각적으로 그리고 서사적으로 표현한 예술적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매일 그리고 있는 일기장의 작은 그림들을 떠올렸다. 펜으로 스케치한 나무들, 물감으로 물들인 간단한 풍경들. 그러나 파묵의 그림은 나의 단순한 습관적 그림과는 달랐다. 그의 그림에는 깊은 사색이 녹아 있었다. 그 사색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글을 쓰는 태도,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끈질긴 의지로부터 나왔다. 


작가와 화가가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마침내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여정. 파묵은 그림을 통해 글을 풍요롭게 했고, 글을 통해 그림을 살찌웠다. 두 예술적 자아가 공존하며 만들어낸 이 책은, 단순히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예술과 삶이 결합된 하나의 우주였다.



이 페이지는 오르한 파묵의 노트 중에서도 특히 따뜻하고 일상적인 순간을 담아낸 작품처럼 느껴진다. 고아(Goa)에 있는 집의 풍경을 그린 이 그림은, 단순한 건물 묘사가 아니라 그곳에서 흘러갔을 소소한 시간들과 그의 기억을 오롯이 담아낸 시각적 기록이다. 집의 구조와 주변의 나무들, 계단 아래 보이는 강아지 두 마리, 그리고 곳곳에 배치된 텍스트들은 그 공간에서 느꼈던 평온함과 향수를 생생히 전달한다. 특히 강아지가 그의 일상 속에서 그려진 것으로 보아, 이는 그가 단순히 풍경이나 건물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의 생명력과 교감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강아지가 포함된 그림이 주는 따뜻한 인상은, 그곳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함께 이 작품을 더욱 생생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각각의 문구는 단순한 메모를 넘어, 그가 경험한 시간의 조각들을 한데 엮어내는 역할을 하며, 그림과 글은 상호 보완적으로 그의 내면세계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단순히 고아에서의 시간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가 느꼈던 삶의 아름다움과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예술적으로 승화한 하나의 작은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상상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소설가 파묵일까, 화가 파묵일까? 아니면 그 둘이 경계를 허물고 완전히 화해한 어느 순간, 삶의 본질을 붙들고자 했던 그 시간의 기록일까?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이 작은 기록들은 결국 그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조각들이 아니었을까. 


파묵은 말했다. “인생은 일련의 그림으로 구성된다. 사람은 그림 뒤에 오는 그림을 궁금해한다. 그다음 그림이 궁금하기 때문에 죽고 싶지 않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펼쳐지는 한 장의 그림에서 다음 그림으로 이어지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단순히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열망 때문일 것이다. 그림은 인생의 여정을 닮았다. 각 그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곡차곡 쌓이며, 삶의 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림이 끝나는 순간, 우리의 여정도 끝난다. 파묵이 “그림이 끝나면 어둠이 시작된다”고 말했듯, 그 어둠은 그림 없는 삶, 즉 존재 없는 상태를 암시한다. 그렇기에 그림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림이 계속되고, 그 그림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곧 삶을 향한 애착과 같다.


결국 먼 산의 기억에서 소설가와 화가로서의 자아를 모두 발견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며, 마침내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여정을 그림과 글로 기록하며, 다음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시 붓을 들었다. 그의 노트는 단순히 한 사람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다음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끝없는 궁금증이자, 삶을 앞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그림이 끝나지 않기를, 삶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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