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평점 :
이야기는 아일리시 스택이라는 한 여성의 눈을 통해 펼쳐진다. 남편이 사라지고,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으며, 세상은 더 이상 익숙한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아일리시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고,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장을 보고, 방을 정리한다. 그녀의 삶은 점점 부서져 가지만, 그녀는 무너질 듯한 현실 속에서 일상의 작은 질서를 붙들려 애쓴다. 이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그녀가 삶을 지탱하기 위해 붙든 마지막 버팀목이다.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 순간은, 아일리시가 부엌에서 접시를 닦는 장면이었다. 폭격 소리가 창문을 흔드는 와중에도, 그녀는 싱크대를 붙잡고 균형을 유지하며 깨끗한 접시를 정리한다. 얼핏 무의미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 행동 속에서 나는 삶을 버티려는 인간의 끈질긴 의지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작은 것이라도 붙들어야만 하는 절박함을 보았다.
이 장면은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뉴스에서 매일 접하는 비극적인 사건들, 전쟁과 억압 속에서 무너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숫자와 영상으로만 지나칠 때가 많다. 그러나 『예언자의 노래』는 이 익명의 얼굴들 뒤에 숨겨진 인간의 고통과 그들이 붙들고 있는 작은 희망들을 조명한다. 뉴스 화면 속 익명성이 덧씌워진 얼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린치의 이야기는 거대한 사회적 혼란의 전조를 넘어, 이미 일어난 개인의 종말에 초점을 맞춘다.
작중에서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들, 앞으로 일어날 일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다. 린치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는가?" 『예언자의 노래』는 거창한 정치적 메시지를 외치지 않는다. 대신, 전 세계 어디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작은 종말들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보여준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스스로를 희생하고,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마주하는 것이다. 아일리시는 가족을 위해 끝까지 싸운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종종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 『예언자의 노래』는 사랑이란 항상 희망을 담고 있지만, 그 희망이 대가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묵직하게 전한다.
그러나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비극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일리시가 부엌에서 접시를 닦는 모습은 전쟁, 가난, 혹은 일상의 무게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려는 수많은 여성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폭력과 억압 속에서도, 그들은 삶의 조각들을 이어붙이며 버텨나간다. 이 책은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책을 덮으며, 나는 아일리시의 이야기가 단지 그녀만의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다를지라도, 모두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각자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세상이 흔들릴 때, 부엌을 정리하거나, 아이들을 챙기거나, 빨래를 개거나,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는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근간인지도 모른다.
『예언자의 노래』는 거창한 결단이나 영웅적인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임을 일깨운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중요한 것은 늘 거대하거나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과했던 평범함 속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다시금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