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글자도서] 채식주의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큰글자도서라이브러리
한강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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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냥 그랬다. 고기를 안 먹겠다고 선언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무슨 대단한 갈등을 만들겠나 싶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니, 그 선언이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영혜는 "나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그 말의 이면에는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던 수많은 질문들이 숨어 있었다. 나는 그 질문들과 마주하면서 내내 불편했다.


영혜는 그저 자신의 선택을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선택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를 "이상하다"고 정의하거나, 심지어 폭력으로 반응한다. 그런데 그 폭력의 장면들을 읽으면서 문득 불안해졌다. 나는 이 세계에서 과연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일까? 그리고 나는 타인의 자유를 진정으로 허용하는 사람인가? 소설 속 남편과 아버지는 어딘가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알게 모르게 내 안에 품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가장 마음에 남은 건 영혜의 나지막한 고백이었다. "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처음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무는 땅에 뿌리내리고, 누구의 간섭도 없이, 그저 거기 존재한다. 아마도 영혜가 진정으로 원한 건 그런 자유로움 아니었을까.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것, 억압받지 않는 삶. 하지만 인간의 세계는 나무처럼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규칙과 기대 속에 얽매이고, 서로를 통제하며 살아간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건, 어쩌면 인간이라는 틀 자체를 벗어나고 싶다는 절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영혜의 그 말에 답할 수 없었다. 한편으론 나도 가끔 나무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자유를 정말로 원하느냐 묻는다면 망설여질 것 같다. 익숙한 억압과 안전한 통제를 떠나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면,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영혜가 원했던 것을 받아들일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강의『채식주의자』는 쉽게 이해하거나,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무심한 척 들춰낸다. "너는 누구의 자유를 침범하고 있니?" "너는 너 자신을 얼마나 통제당하며 살고 있니?" 이 질문들은 책을 읽는 동안은 물론,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들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이 책은 다시 읽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다시 읽지 않더라도 내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 나무가 되고 싶다는 영혜의 외침이, 억압받고 폭력에 노출된 그녀의 몸이,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세상의 차가운 시선들이.『채식주의자』는 그런 책이다. 한 번으로는 끝낼 수 없고, 한 번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끝없이 나를 흔드는 책. 나는 아직도 그 흔들림 속에서 대답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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