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법이 될 때 - 법이 되어 곁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변론
정혜진 지음 / 동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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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하다고 해도 아래에 나열한 이름들 중 하나 이상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김용균 태완이 구하라 민식이 임세원 사랑이 김관홍

 

이름이 법이 될 때는 이들의 이름을 딴 법이 발의 및 시행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앞표지는 흰 바탕에 제목과 법 이름들이 금박으로 새겨진 모양인데, 금박 무늬가 마치 별의 빛번짐 같아 보이기도 한다. 우리 사회를 비추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이 이름들과 법은 별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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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법들은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 못하고 지나간 시간과 아픔을 보상해주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미련해 보일 정도로 열심히 입법을 추진하는 건, 그들이 아픔에만 갇혀 있지 않고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들을 읽으며 종종 울컥했다.

 

(49) 김미숙 씨는 끝까지 책임자 처벌을 호소할 것이다. 경영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이런 사고가 계속 반복될 것이기 때문에.

 

(95) 천안함 피격 사건이나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 세월호 참사에서도 자식 버린 부모가 십수 년 만에 나타나 보상금을 받아갔다니,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생길 텐데 누군가는 나서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122) 국회의원 수대로 포스터를 만들어 보좌관들에게 건네고, 부모들과 함께 피켓을 들었다.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서 아이들이 살아올 리 없고 부모들이 얻을 것도 전혀 없었지만,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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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법 #태완이법 #구하라법 #민식이법 #임세원법 #사랑이법 #김관홍법 은 각각 계기도 다르고 법 조항 내용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언론의 보도와 대중의 관심 덕분에 국회에서 논의되고 입법 절차를 거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당시 뉴스로 접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김용균법과 민식이법이었다. 그 이름들이 각종 매체에 오르내리며 그동안의 노력들이 결실을 맺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그 관심에 힘입어 급하게정해진 법에 문제가 생겼다.

 

(40) 구의역 김 군 사건 때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법안들이 줄줄이 올라왔지만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한 게 교훈이 되어 국회를 계속 압박한 것이 결실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후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이 입법예고되자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다는 법의 취지가 퇴색되었다는 것이다. 실망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으로 이어졌다.

 

(123) 민식이법에 가장 큰 힘이 된 여론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돌연 그 얼굴을 바꿔 민식이 부모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내가 미처 아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실수로 사고를 낼 수도 있는데, 그 경우 민식이법에 따라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부실·과잉 입법 논리와 접목되며 여론이 갑작스레 등을 돌렸다.

(134) 국회가 졸속 심사로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다면 언론과 전문가들은 뒷북으로 문제를 더 키웠다. 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개정안의 법정형과 절차 위반, 졸속 심사에 대해 언급한 보도는 거의 없었다. 그 결과는 유가족을 향한 여론의 가혹한 비난, 불필요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우리는 과실범의 가중처벌 규정을 비판하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상대를 고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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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분노를 제대로 추스르기도 전에 입법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겨우 그들의 이름을 따온 법이 만들어졌는데, 처음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이 여태까지는 본인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며 외면했을 수도 있고,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할 때에만 잠시 관심을 가졌다가 금세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이제는 기억하고 연대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입법운동에 뛰어든 사람들을 외면하는 건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너무 파렴치하지 않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은, 이름을 기억하려는 관심과 입법 과정 감시 과정에 대한 감시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7개 법의 입법과정을 기록 및 소개하며 독자에게 불을 지폈다는 것, 그리고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몫을 알렸다는 것만으로도 이름이 법이 될 때는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다.


※ 동녘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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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
김엘리 지음 / 동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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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군대 안 가는 대신 애 낳아야지.”

 

초등학생 때 양성평등’(당시엔 성평등이 아니라 남녀평등또는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를 교실에서 많이 썼다.)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면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말이다. 그 이후 15년이 지났다. 대선 출마를 결정한 모 후보가 남녀공동복무제를 주장하며 이미 임신/출산한 여성은 군복무와 예비군 훈련을 면제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건 정말이지 15년 전 초등학생의 논리 같아서 웃겼다. 우리나라는 여성 군복무 문제를 아직도 이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건가싶어서 참담하던 차에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을 읽게 되었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은 논문의 어투(?)로 여성 징집제와 여성 군인, 그리고 성평등에 대해 논한다. 이 책은 남자만 군대에 가야 한다라든가 여자와 남자 모두 똑같이 징병해야 한다처럼 다분히 감정적인 입장 중 어느 편에도 쏠려있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2장과 3장에서는 우리나라 여군의 역사를 한국전쟁 시기부터 2000년대까지 짚으며 군인여성 군인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차근차근 알려주기도 한다. 책의 끝부분에 <여성 징집 논쟁과 여군제도의 연대기>라는 표로도 정리되어 있어서 흐름을 살피기에 좋다.

 

여성징병제를 둘러싼 사람들의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추려진다. 첫째는 여성의 병역의무가 부적절하다고 보는 보수주의자의 불가론, 둘째는 급진주의자의 반대론, 셋째는 남녀공동병역의무제 찬성론이다. 저자는 각각의 입장을 소개하고 반박하며 그 중 어느 것도 완전히 옳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보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건 우리나라에서 여성징병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배경일 것이다.

 

(45) 여성 징집 요구는 남녀평등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도 군대에 보내 사람 만들어야 한다는 감정 배설의 뜻이 크다.

 

나는 이 말을 현재 20-30대 남성들이 군대를 통해 또래 여성보다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심리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의 아버지 세대, 할아버지 세대가 아주 자연히 남성상위시대를 살았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구조가 남성은 군인이 되고 여성은 어머니가 되는근대사회의 징병제를 이루는 기본 설계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나는 여태 징병제 문제를 고민하면서 근대라는 키워드와 함께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저자가 제시한 관점이 설득력 있고 배울 만해서 이 지점부터 흥미롭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1장의 내용이다.)

 

2~4장도 매 페이지마다 줄을 치며 읽었는데, 다 소개하기엔 길어서 생략하고 곧바로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가겠다. 5장에서 미국 여군의 역할에 대해 비판한 내용이 눈여겨 볼만했다.

 

(173-174) 여군의 증가는 세계적으로 인권의식이 향상되고 인도주의 외교 정책을 펼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인도주의 정책이 미국의 제국적 위상을 재구축한다는 분석에 귀 기울인다면, 여군의 군 참여가 단순히 성평등 프레임 안에서만 볼 문제는 아님을 알아차리게 된다.

(175) 미국의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인권을 명분으로 실행된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지지함으로써 이슬람 국가들을 인권 지향적인 미국 문명의 대척점에, 야만적이고 비민주적이며 폭력적인 곳에 놓는 효과를 냈다. 서구와 비서구의 대조된 관계에서 새롭게 재편되는 식민화에는 오용된 페미니즘과 성평등의 수사가 있다.

 

여성 군인이 현장에 투입되면 국가주의와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까지 드러난다는 걸, 이전에는 알지도 못했고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어렵지만 이 문제들을 동시에 고민하며 군대 그 자체에 대해 사유하고 또 사유해야함을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이 일깨워준 셈이었다.

 

전반적으로 약간 어려웠지만, 협소한 시각에 갇히지 않고 여성 징집제와 군인에 대한 여러 입장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천천히 한 번 더 읽으면서 내 생각도 정리해봐야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여성 징집 요구는 남녀평등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도 ‘군대에 보내 사람 만들어야 한다’는 감정 배설의 뜻이 크다. - P45

여군의 증가는 세계적으로 인권의식이 향상되고 인도주의 외교 정책을 펼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인도주의 정책이 미국의 제국적 위상을 재구축한다는 분석에 귀 기울인다면, 여군의 군 참여가 단순히 성평등 프레임 안에서만 볼 문제는 아님을 알아차리게 된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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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핑의 과학 - 경기장을 뒤흔든 금지된 약물의 비밀
최강 지음 / 동녘사이언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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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막을 내린 도쿄 올림픽 관련 뉴스에서 다들 도핑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도핑(doping)이란 운동선수가 경기능력 향상을 위해 약물 또는 기술을 사용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핑이 나쁘고, 공정하지 않고, 삼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도핑에 대한 인식이 처음부터 부정적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도핑의 과학은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후로 100여 년간 도핑이 인체의 능력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권장의 대상에서, ‘국제 대회에서 정치 체제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선전 도구, 이어서 선수 개인의 건강을 해치고 스포츠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축출의 대상으로 성격이 바뀌어 왔음을 알려준다.

 

스테로이드 같이 유명한 물질 외에도 여러 약물과 기술, 심지어는 수영복과 의족까지도 도핑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도핑의 과학을 통해 알게 되었다. 평상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복용하는 감기약도 운동선수들에게는 경계해야할 대상이라는 게 흥미로웠다😮

 

(64) 기관지를 넓히는 특성 때문에 클렌부테롤은 기도가 좁아져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천식이나 만성 기관지염의 치료에 사용된다. 아울러 기관지의 섬모 운동을 촉진시켜 가래의 배출을 돕는 소위 진해거담효과가 있기에 감기약으로도 종종 처방된다.

(65) 근육을 증가시키는 단백동화 효과 때문에 클렌부테롤은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어 금지약물로 분류되었다. 운동선수는 감기약도 조심해야 한다. 알고 먹었든 모르고 먹었든 일단 몸에서 약물이 검출되면 100퍼센트 선수 본인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선수들은 의학적으로 약물 복용이 필요한 상황에서 치료 자체를 거부하곤 한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로 국가적으로 도핑을 적극 장려하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96)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독은소련의 지배를 받으면서 민주주의가 사라졌고, 쓸만한 생산 시설을 소련에 빼앗겨 만성적인 불황이 지속되었다. 압제자에 가까운 소련에게 국가의 자존심이 짓밟힌 동독은 운동 경기에서 성과를 내는 데에 골몰했다. 비교적 빠르고 저렴하게 체제의 우월함을 선전하고 나라의 명망을 드높이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하이디 크리커라는 선수는 동독의 국가적 도핑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적이 있다. 크리거가 복용한 튜리나볼이라는 약물은 AAS(단백동화남성화 스테로이드)의 한 종류였다.

 

(100) 동독 정부가 선수들에게 몰래 투여한 AAS는 근육을 키우고 힘을 늘리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단백동화뿐만 아니라 남성화 효과도 같이 일어난 것이다. 여자 선수들의 목소리가 남자처럼 굵어지고, 온 몸이 털과 여드름으로 뒤덮였다. 동독의 의료진과 체육 관계자는 남성화 부작용을 인식했지만, 도핑으로 거둘 수 있는 성과가 컸기에 부작용을 외면하거나 무시했다.

 

하이디 크리거는 남성 호르몬인 AAS로 인해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겪었고 결국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별을 바꾸고 이름도 안드레아스 크리거로 바꾸었다고 한다. 국가가 운동선수들을 도구로 인식하는 것과 그로 인한 도핑을 경계해야하는 이유를 온몸으로 보여준 셈이었다.

 

이런 사례를 보면 도핑 테스트를 통해 올림픽 정신을 어긴 선수를 찾아내고, 공정하게 참가한 선수에게만 메달을 수여하겠다는 말은 당연히 옳은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도핑 테스트에 대한 규정을 세우는 과정에서 여러 권력 관계가 얽히고 차별이 발생하기 때문에 의외로 공정하지 않은 면도 있다.

 

만약 남성 선수가 성별을 속이고 여성 선수들의 경기에 나서는 행위는 도핑처럼 경기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이므로 IAAF(국제육상경기연맹)는 여성 선수 성별 검사,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염색체 검사를 시행한 적이 있다. 그런데 IAAF가 시행한 검사는 엄청나게 인권침해적이고, 간성(intersex)인 사람의 경우 겉보기엔 여자 같아도 염색체가 XX로 판별되지 않기 있기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트랜스젠더 운동선수들도 성별 때문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에 출전한다. 남자일 때 테스토스테론의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성별을 바꿔도 선천적인 여자 선수보다 경기력이 뛰어날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선수가 괴물처럼 플레이할 것이라는 통념과는 다르게 2015년의 연구(Harper, “Race times for transgender athletes”, J Sporting Cult Identities, 2015.6: p1-9)에 따르면 성전환 여자 선수의 기록이 다른 여성 선수들의 범위를 뛰어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이 연구는 달리기 선수만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만, 내가 팩트풀니스를 처음 읽었을 때처럼 편견이 깨지기에는 충분했다.

 

에필로그에 이제껏 일상에서 흔히 접하던 약물과 도구나 기계, 나아가 스포츠가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면 글을 쓴 사람으로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는 말이 있었다. 저자의 바람대로, 나에게는 도핑이 단순히 약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들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관점으로 스포츠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서평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도핑의 과학을 추천하고 싶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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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복숭아 - 꺼내놓는 비밀들
김신회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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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남궁인 작가님 하나만 믿고 책을 집었는데, 남궁인 작가님은 물론이고 다른 여덟 작가님들의 글도 술술 읽혀서 좋았다! 이 책에서 복숭아취약점이자 복덩이를 뜻하는데, 남궁인 작가님은 음치’, 이두루 작가님은 영상 독해 능력’, 최지은 작가님은 과자’, 이소영 작가님은 식물세밀화가나의 복숭아라며 소개한다. 이분들의 글이 재미있고 와닿았던 건 나의 복숭아와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인데, 특히 남궁인 작가님이 그랬다.

 

나는 작년 2제법 안온한 날들블라인드 모니터링 행사에서 남궁인 작가님을 처음 접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참석했던 마지막 책 관련 행사여서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아무튼 작가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미출간 원고를 읽으러 간 거였는데, 행사가 시작되고 작가 소개 영상을 보고서야 남궁인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다. 영상 속에서 작가님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덕분에 나에게 남궁인은 피아노도 치고 글도 쓰는 꽤 멋진 의사로 각인되었다.

 

그런데 피아노 치는 사람이 음치라니;; 악기를 잘 연주하면 노래도 잘 할 거라는 자동화된 기대가 ----를 읽으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작가님은 중고등학교, 의료봉사 동아리, 직장인 밴드 등에서 타인에 의해 실감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노래실력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34) 나는 진짜배기 음치다. ‘로 낼 수 없다. 그렇게 안 난다. ‘로 낼 수 없다. 도저히 안 된다. 만약 훈련과 초집중을 통해서 운이 좋게 에서 제 음을 냈다고 해도 보다 높은 음은 전부 와 비슷한 소리가 나간다.

 

(41) 어느 날은 좋아하던 유행가를 불러보았다.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저게 무슨 노래래?”

가사는 보아 노랜데…….”

그럼 보아 노랜가봐.”

나는 재차 깨달았다. ‘아예 가사를 듣고서야 감별이 되는구나. 내 노래에서 음정과 박자는 무용하구나.’ 지금은 내가 보아 노래를 직접 부르는 일이 금지되어 있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음을 알지만, 당시 나는 스무살이었다.

 

(43-44) 가장 초보적인 노래로 기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그 다음 가사는 익히 아는 대로 새벽에~ 토끼가~”. 그런데 새벽에는 무려 한 옥타브가 높은 음이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음을 낼 수 없었다. 내가 부르는 는 줄곧 컨디션 나쁜 밥솥에서 맹렬히 김이 빠져나가는 소리로 들렸다. 새벽이 지나가야 토끼가 등장할 텐데, 토끼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등장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안타까워하셨다. 임재범이나 김범수 노래도 아니고 옹달샘을 부르면서 좌절하는 아들이라니. 그렇게 나는 기타도 포기하고 말았다.

 

작가님께는 죄송하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육성으로 웃기까지 했다(안티팬 아닙니다😂). 근데 이건 사실 마냥 재미있어서 깔깔거리며 웃은 게 아니라,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리며 웃어버린 거다. 앞에서 말했듯이 내 복숭아도 작가님의 복숭아와 닮은 구석이 있는데, 사실 나도 음치다. 박치와 몸치라는 옵션은 덤이다.

 

나는 내가 음치라는 걸 열다섯 살 때 깨달았다. 당시 교회 중등부에는 기타 치는 인도자와 반주하는 건반 연주자, 그리고 싱어(보컬)가 있었는데 매주 토요일에 모여서 연습을 한 뒤 일요일 예배 시간에 찬양(노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꽤 모범생이었던 나는, 교회 열심히 다닌다는 사람은 한 번쯤 거쳐 간다는 찬양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거기서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노래 부르고 친해진다는 건 좋았는데마이크를 잡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연습시간마다 다같이 악보를 보며,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하는데 앰프를 통해 조화롭지 못한 소리가 크게 들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게 자주 반복되다보니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인도자 선생님은 싱어들의 음정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무반주 상황에서 노래를 불러보라고 시키셨다. 그제서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노래하다가 숨을 쉴 타이밍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호흡이 딸릴 때마다 음정이 휘청휘청했다. 달리 말하자면 삑사리가 자주 났고, 높은 이상으로 음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합주가 조화롭지 못했던 이유를 알고 나서는 함부로 마이크를 입 가까이에 대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는 점차 연습에 가기 싫어졌고, 마침내 인도자 선생님에게 팀을 그만둔다고 말씀드렸다. 왜냐고 묻는 선생님에게 제가 음치라서 폐만 끼치는 것 같아요라고 차마 말하지는 못했고, 그냥 얼버무린 기억이 난다.

 

이렇게 암울한 분위기로 끝내면 이상하니까 좀 긍정적인 얘기를 해보겠다. 남궁인 작가님이 말했듯이 나도 참 관대하고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다.” 대놓고 노래 실력을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포용해주셨던 고마운 분들이 많다. 일례로 스물두 살 때 (역시나 교회 고인물답게) 초등부 교사를 했는데, 무려 율동 선생님이 내 직함이었다. 다시 떠올려보면 아찔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핀마이크를 착용하고 괴성을 내질렀고 허공을 크게 휘적이며 손짓 발짓을 해댔다. 그런데도 초등부 선생님들은 나를 질책하기는커녕 항상 격려해주셨다. (그때 받았던 사랑보다 큰 사랑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고, 그 힘으로 지금까지도 살아있음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합니다💙)

 

한줄평: 작가님들의 복숭아를 통해 나의 복숭아도 끄집어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 출판사에서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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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ABC -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기후 위기의 모든 것
다비드 넬스.크리스티안 제러 지음, 강영옥 옮김, 남성현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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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ABC지구과학이나 환경 관련 전공 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들이 기후변화, 기후 위기, 아니 기후 비상에 처한 오늘의 지구환경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침서”(4)이다. 추천사는 이 책이 중요한 지식, 간결한 설명, 생생한 일러스트의 환상적 조합”(7)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고 말하는데, 과연 올컬러(!) 그림과 그래프가 매 페이지마다 나와서 독자에게 텍스트의 압박감을 선사하지 않는다.

 

띠지처럼 강조된 앞표지 하단에는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기후위기의 모든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앞날개에는 저자 다비드 넬스와 크리스티안 제러의 소개글이 있는데, 여기에서 이 책의 정체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솔직히 고백하면 두 사람 모두 두꺼운 전문 서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기후변화에 대해 알기 쉽게, 학문적으로 정확하게, 짧은 텍스트로 정리되어 있는 책을 찾고 또 찾았다. 그런 책은 없었고 두 사람이 직접 책을 써보기로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두 저자는 과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이다. 그래서인지 기후변화 ABC는 기후변화의 기저에 있는 과학적 원리에만 치중하지 않고, 기후변화가 지구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문과적(?) 언어로 기술한 책에 가깝다.

 

나는 기후변화 ABC가 환경 교육 분야에서 개념어 사전으로 활용하기에 좋다고 생각했다. 일단 그림이 많아서 눈길이 가는 데다가, 일곱 개의 장을 따라 차근차근 핵심 개념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교양 과학책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기에 문장들이 조금 딱딱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밀조밀한 인포그래픽을 자세히 살피며 읽다 보면 기후변화 ABC가 꽤 괜찮은 책이며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124) 현재 관찰되는 기온상승현상은 산업화 초기부터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밝혀졌다. 달리 생각하면 이는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다. 우리도 기후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기후변화를 그저 무기력한 태도로 대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현재 관찰되는 기온상승현상은 산업화 초기부터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밝혀졌다. 달리 생각하면 이는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다. 우리도 기후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기후변화를 그저 무기력한 태도로 대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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