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복숭아 - 꺼내놓는 비밀들
김신회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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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남궁인 작가님 하나만 믿고 책을 집었는데, 남궁인 작가님은 물론이고 다른 여덟 작가님들의 글도 술술 읽혀서 좋았다! 이 책에서 복숭아취약점이자 복덩이를 뜻하는데, 남궁인 작가님은 음치’, 이두루 작가님은 영상 독해 능력’, 최지은 작가님은 과자’, 이소영 작가님은 식물세밀화가나의 복숭아라며 소개한다. 이분들의 글이 재미있고 와닿았던 건 나의 복숭아와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인데, 특히 남궁인 작가님이 그랬다.

 

나는 작년 2제법 안온한 날들블라인드 모니터링 행사에서 남궁인 작가님을 처음 접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참석했던 마지막 책 관련 행사여서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아무튼 작가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미출간 원고를 읽으러 간 거였는데, 행사가 시작되고 작가 소개 영상을 보고서야 남궁인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다. 영상 속에서 작가님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덕분에 나에게 남궁인은 피아노도 치고 글도 쓰는 꽤 멋진 의사로 각인되었다.

 

그런데 피아노 치는 사람이 음치라니;; 악기를 잘 연주하면 노래도 잘 할 거라는 자동화된 기대가 ----를 읽으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작가님은 중고등학교, 의료봉사 동아리, 직장인 밴드 등에서 타인에 의해 실감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노래실력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34) 나는 진짜배기 음치다. ‘로 낼 수 없다. 그렇게 안 난다. ‘로 낼 수 없다. 도저히 안 된다. 만약 훈련과 초집중을 통해서 운이 좋게 에서 제 음을 냈다고 해도 보다 높은 음은 전부 와 비슷한 소리가 나간다.

 

(41) 어느 날은 좋아하던 유행가를 불러보았다.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저게 무슨 노래래?”

가사는 보아 노랜데…….”

그럼 보아 노랜가봐.”

나는 재차 깨달았다. ‘아예 가사를 듣고서야 감별이 되는구나. 내 노래에서 음정과 박자는 무용하구나.’ 지금은 내가 보아 노래를 직접 부르는 일이 금지되어 있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음을 알지만, 당시 나는 스무살이었다.

 

(43-44) 가장 초보적인 노래로 기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그 다음 가사는 익히 아는 대로 새벽에~ 토끼가~”. 그런데 새벽에는 무려 한 옥타브가 높은 음이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음을 낼 수 없었다. 내가 부르는 는 줄곧 컨디션 나쁜 밥솥에서 맹렬히 김이 빠져나가는 소리로 들렸다. 새벽이 지나가야 토끼가 등장할 텐데, 토끼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등장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안타까워하셨다. 임재범이나 김범수 노래도 아니고 옹달샘을 부르면서 좌절하는 아들이라니. 그렇게 나는 기타도 포기하고 말았다.

 

작가님께는 죄송하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육성으로 웃기까지 했다(안티팬 아닙니다😂). 근데 이건 사실 마냥 재미있어서 깔깔거리며 웃은 게 아니라,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리며 웃어버린 거다. 앞에서 말했듯이 내 복숭아도 작가님의 복숭아와 닮은 구석이 있는데, 사실 나도 음치다. 박치와 몸치라는 옵션은 덤이다.

 

나는 내가 음치라는 걸 열다섯 살 때 깨달았다. 당시 교회 중등부에는 기타 치는 인도자와 반주하는 건반 연주자, 그리고 싱어(보컬)가 있었는데 매주 토요일에 모여서 연습을 한 뒤 일요일 예배 시간에 찬양(노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꽤 모범생이었던 나는, 교회 열심히 다닌다는 사람은 한 번쯤 거쳐 간다는 찬양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거기서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노래 부르고 친해진다는 건 좋았는데마이크를 잡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연습시간마다 다같이 악보를 보며,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하는데 앰프를 통해 조화롭지 못한 소리가 크게 들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게 자주 반복되다보니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인도자 선생님은 싱어들의 음정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무반주 상황에서 노래를 불러보라고 시키셨다. 그제서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노래하다가 숨을 쉴 타이밍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호흡이 딸릴 때마다 음정이 휘청휘청했다. 달리 말하자면 삑사리가 자주 났고, 높은 이상으로 음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합주가 조화롭지 못했던 이유를 알고 나서는 함부로 마이크를 입 가까이에 대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는 점차 연습에 가기 싫어졌고, 마침내 인도자 선생님에게 팀을 그만둔다고 말씀드렸다. 왜냐고 묻는 선생님에게 제가 음치라서 폐만 끼치는 것 같아요라고 차마 말하지는 못했고, 그냥 얼버무린 기억이 난다.

 

이렇게 암울한 분위기로 끝내면 이상하니까 좀 긍정적인 얘기를 해보겠다. 남궁인 작가님이 말했듯이 나도 참 관대하고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다.” 대놓고 노래 실력을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포용해주셨던 고마운 분들이 많다. 일례로 스물두 살 때 (역시나 교회 고인물답게) 초등부 교사를 했는데, 무려 율동 선생님이 내 직함이었다. 다시 떠올려보면 아찔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핀마이크를 착용하고 괴성을 내질렀고 허공을 크게 휘적이며 손짓 발짓을 해댔다. 그런데도 초등부 선생님들은 나를 질책하기는커녕 항상 격려해주셨다. (그때 받았던 사랑보다 큰 사랑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고, 그 힘으로 지금까지도 살아있음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합니다💙)

 

한줄평: 작가님들의 복숭아를 통해 나의 복숭아도 끄집어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 출판사에서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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