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게임 마니아가 ‘드래곤 퀘스트‘의 숨겨진 기술 찾기에 열중했던 것처럼, 어른 문학 마니아가 얼마나 ‘하루키 퀘스트‘에 열중해 있었는지 그 발자취를 잠시 따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P16

확실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작품=하루키 랜드에는 다방 분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주택가 한적한 곳에 위치한, 누구나 마음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작은 다방. 거기에는 다방 주인과 손님이 ‘기분 좋다‘고 느낄 만한 인테리어 소품이 놓여 있습니다. 해외 문학(데릭 하트필드), 색 바랜 사진 "그것은 내가 코닥 포켓 인스터매틱으로 찍은 사진 중 유일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진이었다. 쥐는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의 격추왕처럼 보였다."), 핀볼 게임기(스리 플리퍼 스페이스십) 같은 것들. 물론 그곳은 다방이기에 마실 것(차가운 맥주)과 먹을 것(샌드위치, 스파게티)이 있고 실내에는 기분 좋은 음악(스탠 게츠)이 흐르고 있습니다. - P19

이것은 주인장이 보내는 중대한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낸 이들은 주인장과 같은 세대=베이비붐 세대 비평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방에 붙어살며 게임기를 가지고 이리저리 놀아보다가 곧 다방의 게임 속에 1970년‘, ‘전공투‘, ‘상실‘, ‘소외‘, ‘자폐‘, ‘다른 세계‘, ‘죽음과 재생‘ 같은 그들이 좋아하는 단어가 숨겨져 있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태평하게 낙서장에 끄적이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루키 랜드의 존재 이유는 게임 속에 숨겨져 있다. 그렇게 판단한 그들은 집에 돌아가 ‘게임 해설‘에 관한 상세한 책자를 열심히 만든 후, 태평하게 앉아 있는 손님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나누어 주기 시작합니다. 쓸데없이 복잡한 ‘본격적 비평 시대‘의 개막입니다. - P21

게임 다방으로 변한 하루키 랜드의 손님들은 여기서부터 두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게임 해설에 목숨을 건 소수의 마니아와 다방 분위기를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대다수의 손님으로. - P22

게임 해독 열풍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발전해버립니다. 게임의 소문을 듣고 몰려든 손님들은 냅킨 한 장부터 테이블 다리에 이르기까지 하루키 랜드에 있는 거의 모든 기기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퍼즐 해독자가 된 그들에게는 더 이상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 P25

무라카미 문학은 사실 게임 소프트웨어 그 자체였습니다. - P30

다만 제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계기로 텍스트의 게임성, 퍼즐성을 깨달으면 대단한 발견을 한 듯한 기분이 들어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된다는 것. - P31

아!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아직 하루키 랜드가 다방에서 오락실로 변한 것을 모르는 고상한 손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태엽 감는 새』는 그런 손님들을 당혹케 했습니다. 그리고 평가는 둘로 갈라졌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단하다‘고 무책임하게 칭찬하는 사람들과 ‘이런 엉망진창인 다방에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테다‘라며 격분한 사람들로. - P34

복잡기괴하고 이리저리 뒤엉킨 『태엽 감는 새』는 마지막 불꽃놀이가 되어 사라졌고 1990년대 후반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박한 시대로 회귀‘합니다.
다음 수수께끼는 무엇일까, 두 손을 비비며 기다리던 독자 앞에 하루키가 내놓은 작품은 『언더그라운드』(1997)와 『약속된 장소에서』(1998)라는 두 권의 논픽션이었습니다. 더욱이 『언더그라운드』는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자, 약속된 장소에서는 그 가해자 측인 옴진리교 신자를 인터뷰한 내용이었습니다. 현실과의 접점이 없다고 여겨졌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한 일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 P38

무라카미 작품은 독자의 참여를 부추기는 인터렉티브 텍스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기분을 불러일으키고, 혹은 퍼즐이나 게임을 풀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무라카미 문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수수께끼 푸는 솜씨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난 젊은 비평가들이게 하루키는 최상의 재료를 제공해주었던 것입니다. - P39

무라카미 하루키를 둘러싼 비평 게임은 ‘오타쿠 문화‘의 시작이 아니었을까요? - P40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동료들, 즉 하루키 랜드는 시종일관 ‘보쿠‘라는 일인칭으로 상징되는 ‘남자아이들의 세계‘였다는 점을 떠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과연 ‘여자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이런 게임 공략이 가능했을까요? 그건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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