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고봉준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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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김수영의 삶도 시도 모르는 문외한이라는 점을 알리며 글을 연다.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서 <폭포>나 <풀>을 읽은 게 전부라서 너무 어려운 책을 잘못 집어든 건 아닌지😂 지레 겁부터 먹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렇게 얄팍한(!) 교양으로도 <이 무수한 반동이 좋다>을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오히려 나처럼 김수영에 대해 배운 바는 적지만 김수영을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 ‘교과서적이지 않은‘ 해석과 인사이트를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무수한 반동이 좋다>는 연구자들이 김수영의 삶과 시에 대해 쓴 26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1부: 탄생과 일제 강점기, 2부: 한국전쟁기, 3부: 구수동 거주 시기, 4부: 4.19혁명 이후, 5부: 시대를 비추는 거울 등 연대 순으로 구성된 점이 눈에 띈다.

각각의 꼭지가 길지 않고 사진과 육필원고 자료가 많이 들어 있다. 200자 원고지에 적힌 시어들과 손글씨의 맛을 살필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다음은 내가 밑줄을 그어가며 읽은 부분이다.


3. 일본, 일본어
🔖(40쪽)그는 익숙한 일본어로 쓰고 사전을 찾아 낯선 한국어로 번역했다. 늘 사전을 뒤적이며 시를 써야 했던 그에게 ˝사전이 시˝였다.
🔖(42쪽)지리멸렬의 시대에 유대인 카프카가 써야 했던 독일어처럼, 김수영에게 일본어는 소수자 언어가 아닐까. ‘친일문학 = 일본어 사용‘, ‘민족문학 = 한국어 사용‘이라는 낡은 이항대립은 그의 글쓰기 앞에서 박살 난다.

8. 기계: 시인이 헬리콥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설움‘을 이끌어내는 감각에 놀랐다.

헬리콥터가 풍선보다도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14. 자유: 시인으로서 자유로우려면 시민으로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152쪽) 한국전쟁 당시 김수영이 갇혀 있던 포로수용소는 화장실에서 목 잘린 시체가 떠오르곤 하던 곳이었다. 그는 2년 간 수용되어 있다 자유의 몸이 되어 풀려났다. 그러나 쓰려던 사상을 금지당한다면, 시를 통해 말한 것이 공적 공간에서 의미 있는 발화로 인정될 수 없다면, 그것은 그에게 형편 좋은 수용소 안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학적 자유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닻을 내릴 수 있을 때에만 온전한 것이다. 자유는 정착을 경계하지만 난파가 아니다. 물 위에 거주하려면 정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을 위해 그는 역사 속에 시의 거대한 닻을 내리려 했다.

20. 번역
🔖(201쪽)그가 내세운 ‘전통‘과 ‘뿌리‘는 민족주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에 대한 부정이었다. 이것이 바로 김수영의 문학을 당대의 전통주의, 또는 세계주의와 구분 짓는 특징이다. 김수영이 이것을 서양, 즉 중심을 ‘번역‘하면서 깨달았다는 사실이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1. 여혐
제목을 자극적으로 달긴했지만 내용을 들추어보면 김수영의 시 세계를 완전히 매도하지도 않고, 마냥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갱생 불가능한 한남‘이 아니라 여편네를 아내로 고쳐 부르고 화해를 청한다는 점에서 ‘주체와 타자의 얽힘을 솔직하게 쓴 시인‘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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