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일 뿐이면. 왜 써?"

당연한 말이지만,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에서 자유로운 객관적이고 중도적인 신문은 없다. 편향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편향성을 없앤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것은 소위 ‘이퀄리즘’이나 ‘기계적 균형’처럼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삭제함으로써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 수치심의 방향이 이상하지 않냐고, 형처럼 조국과 민족의 영광과 자신의 성공을 동일시하는 지식인 가부장의 과잉된 자아와, 여성을 거래하고 퀴어를 혐오하는 방식으로 구축된 젠더적 실존을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냐고 되묻는 것이다.

굳이 제 유전자를 담은 생명을 만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주변의 생명들과 생명력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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