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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걸려버렸다 - 불안과 혐오의 경계, 50일간의 기록
김지호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10월
평점 :

백신도 치료제도 아직 없던 시기,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마치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되어야 할 것만 같은 존재, 위생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더러운 존재로 취급받았다. 지금은 모두(?)가 합심해서 정부를 욕하지만 당시만해도 SNS상에서 비감염자들은 감염자를 대상으로 한 두려움, 혐오, 분노를 여과없이 뱉고 퍼뜨렸다...고 기억한다. 특히 종교집회, 클럽, 시위에 다녀와서 감염된 사람들이 엄청나게 질타당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때 감염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인 적이 있긴 했던가? 사이비 종교 집회에 참석하지도 않고 클럽에서 흥청망청 논 것도 아닌데 그냥 재수없게 걸려버린 사람은 어땠을까? 우리는 그동안 너무 두려움에 질린 나머지, 입에 방아쇠가 달린 것마냥 부정적인 말을 떠들어대고 귀는 닫아버리지 않았나? 그래야만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코로나에 걸려버렸다』는 실제로 코로나19에 감염되어 2020년 늦봄부터 여름의 끝자락까지 감염자의 입장에서 코-시국을 기록한 것이다. 저명한 학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20대 직장인이 썼기에 어려운 내용도 없고 잘 읽힌다.
저자는 예상치 못하게 코로나에 감염되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50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확진자수 그래프에 드러나지 않는, 감염자의 일상과 심리를 글로 남겼다. 구급차를 타고 이송되는 순간부터 병실 내부와 식단을 찍은 사진까지 들어 있어서 눈길이 갔다.
🔖(81쪽)누구든 걸리고 싶어서 걸린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손가락은 나에게, 확진자에게, 우리를 향한다. 자신도 걸릴까봐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죄를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확진자들에게 씌운다.
🔖(11쪽)두려움이 우리의 민낯을 드러냈다.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2주간 자가격리를 했기 때문에 월급을 날린 헤어디자이너, 클럽에 다녀온 뒤 확진되어 회사에서 잘린 친구의 이야기도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이 격리해제되고, 완치되면 위생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사회는 이들에게 경제적 불이익을 선사한다. 저자도 퇴원 후 회사와 헬스장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을 겪었다고 한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뭔가 이상하고 께름칙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바이러스로 보는 듯한 분위기가 만연했던 것이다.
작년 말부터 방역패스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을 때도 본질은 같았다. 미접종자들이 식당이나 카페에서 출입금지 조치를 당할 때, 사람이 아니라 바이러스 취급을 받는 것처럼 느꼈다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관련한 모든 발언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방역패스처럼 경계를 나누고 차별하는 적극적인 행위를 가능케 한 요인은 무엇일까.
핵심은 이것이다. 저자 김지호가 수차례 지적하듯이, 이 시국의 주된 문제는 코로나19 그 자체가 아니라 공포에 질려 이성이 마비된 상태, 그래서 서로 배려하는 법을 잊고 이기심을 자유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코-시국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물론 치료제나 집단면역 같은 요소가 필요하겠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지 않으면 영영 상흔을 지울 수 없을 것이라는 섬뜩한 느낌까지 든다.
백신도 3차까지 접종하고, 먹는 치료제도 도입한 2022년의 우리는 2년 전에 비해 얼마나 성숙해졌는가? 상황이 나아져도 우리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재난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것이다. 잠시 멈춰서서 여태까지의 행동과 말을 돌아봐야할 때, 이 책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 '두려움'을 더 깊이 파고들고 싶다면 마사 누스바움의 책 『타인에 대한 연민』(알에이치코리아, 2020)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