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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
정지돈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작가님 되게... istp 같으시다 (아님 말고... 근데 딱 잇팁의 바이브 그 자체임)
플라뇌르라는 키워드를 던지는 책에 걸맞게, 나도 특별한 목적 없이 읽으며 휘뚜루마뚜루 페이지를 넘길 요량으로 책을 집어들었다(리뷰를 작성하겠다는 생각은 언제나 기저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무목적 상태는 아니었지만...).
이 책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름은 금정연, 오한기, 이상우, 그보다 자주 등장하진 않지만 무게감 있는 이름은 발터 벤야민, 버지니아 울프, 리베카 솔닛 등등... 나머지는 기존 배경지식이 없어서 그런지 빠르게 휘발되어 버렸다...(한 번 더 읽어야 할지도).
말줄임표와 괄호가 많아서 정제된 에세이집이라기보단 블로그 글모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게 싫다는 건 아니고... 후루룩 읽혀서 오히려 좋아... 중간중간에 걸리는 자갈(혹은 조약돌) 같은 문장도 괜찮아서 적어 두었다... (플라뇌즈와 모던걸을 묶어 사유하는 방식은 처음 봐서 흥미돋)
정지돈 작가님과 마주 앉아서 2시간 동안 조용히 떠들며 즉석 떡볶이 한 냄비를 해치운 기분이다(근데 이제 금정연, 오한기, 금정연, 오한기, 발터 벤야민, 금정연, 오한기를 곁들인...). 떡볶이는 아무래도 소울푸드니까... 나중에 또 찾아 오겠지 아마도?
도시를 가로지르고 표류하고 발견하고 점거하고 걷기 위해서는 도시를 배워야하고 배우기 위해서는 발화-보행해야 한다. - P16
문학의 주된 원료는 망함이다. 좀 더 그럴듯한 단어로 하면 파국, 몰락. 쉬운 단어로는 실패, 패배. - P30
플라뇌르의 산책은 흔히 거북이의 속도와 비견된다. 게으르고 느린 구경꾼의 시선, 산업화의 속도를 거부하는 완만한 속도. 그러나 사실 플라뇌르가 거북이 속도로 걷는 이유는 실제로 거북이와 함께 걸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튀기 위해 가재나 거북이에게 목줄을 묶어 산책했다. - P81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 유예된 공간에 기거하고 싶은 욕망(...) 산책은 이럴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 P90
백인(남성)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세계가 자기 집 앞마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들은 두려울 게 없고 두려운 게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믿는다(그런 의미에서 플라뇌르적 산책을 실천하는 데 가장 최적화된 것은 백인(남성)이다). - P128
차별과 혐오는 예외적인 행위가 아닌 일상적인 상태에 가깝다. 그러므로 저항도 그래야 한다. 저항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져야 할 상태다. - P133
발터 벤야민의 야심 또는 꿈이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는 것은 도보도 자동차도 아닌 전동 킥보드다. - P163
모던걸들은 왜 플라뇌즈로 개념화되지 못했을까. 그들이 자주 비판받은 요인 중 하나가 여성은 상품 소비문화의 수동적인 노예에 불과하다는 시각이었다. 플라뇌르 역시 동일한 문화에서 탄생했지만 남성들이 관찰자이자 소비자로서 양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반면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모던걸은 허영과 사치를 일삼는 성적 방종의 상징이었다. - P187
자동차의 애칭은 ‘등대‘. 그녀는 동생과 함께 넓은 공터에서 운전을 배웠지만 운전 실력은 평생 늘지 않았다(울타리를 몇 번이나 들이받았다). 그럼에도 버지니아 울프는 드라이브를 사랑했다. - P199
진정성은 자유주의 같은 거라서 결국 문제는 윤리와 경제, 두 차원으로 환원된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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