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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이동호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평점 :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는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문구다. 과연, 저자 이동호는 '글빨'이 굉장한 작가이다.
1부 '공장과 농장 사이'는 돼지 3마리를 직접 키우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엮은 것인데, 돼지를 처음 마주하고 축사로 데려오는 장면들이 맛깔나게 서술되어 있어서 낄낄거리며 읽었다. 거의 모든 장에 삽화가 들어가 있어서 그림을 토대로 축사를 상상해 보기도 했다.
저자는 공장식 축산업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돼지를 돼지답게 키우고 싶어서, 그리고 그 돼지를 잡아 먹음으로써 육식을 대하는 자세를 제대로 알고 싶어서 꽤나 정성스레 돼지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73쪽)과수원에서 적과한 새끼 사과를 모아 돼지에게 주었다. 사람이 먹지 않는 오디와 벌레 먹은 자두도 주었다. 돼지는 이 모든 걸 아주 맛있게 먹었다. "츄릅 츄릅." 동네 빵집에서 팔고 남은 빵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일하는 목장의 비품 요구르트를 섞어 주기도 했다. 고구마 쭉정이, 상처 난 감자 같은 농부산물은 계절을 돌아가며 나왔다.
다른 축산업자들이 으레 하듯이 곡물 사료를 먹이지 않고 굳이 이런 식으로 먹이를 구해다주는 경험을 통해 저자는 "별도의 에너지 투입 없이 생긴 먹이로 돼지를 기른다는 뿌듯함은 물론 돼지가 무엇을 먹고 좋아하는지를 보며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75쪽)을 발견한다. 심지어는 땀샘이 없어 더위에 취약한 돼지들을 위해 여름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물을 부어 '워터파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103쪽)돼지들은 하마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돼지들은 물에서 하루를 보냈다. 밥 먹을 때, 잠시 어슬렁거릴 때를 빼고는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밥그릇도 수영장 물 위를 떠다녔다. 물을 흠뻑 묻히고 나와 개처럼 몸을 털었다. 아이들 웃음소리에 배부르다더니, 돼지들이 물에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에 내 더위도 가시는 것 같았다.
유쾌하고 마음이 시원해지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이 책의 주제가 '행복한 돼지의 삶'이 아니라 '돼지 키우고 잡아 먹기'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처음의 목적대로, 돼지를 잡아야 하는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2부 '생명과 고기 사이'는 결국 돼지를 죽이고 얻은 고기를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이야기이다.
(115쪽)나는 돼지의 이름을 짓지 못했다. 아무 이름이나 갖다 붙여도 이름을 부르는 순간부터는 관계가 달라질 위험이 있다. 유일의 존재가 되고 애정을 갖게 될 것 같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몇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다.
필요 이상의 친밀함을 나누지 않기 위해 이름도 붙여주지 않은 암퇘지 한 마리를 잡기로 약속한 날 새벽, 저자는 돼지를 기절시키기 위해 망치를 들었다. 그러나...
(137쪽)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내려칠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함께한 시간이 떠올랐다거나 추억 같은 상념에 젖은 건 아니었다. 내 몸의 저항을 주도하는 정체는 살아 있는 생명을 망치로 내려친다는 것, 생명을 해치는 행위에 대한 거북함이었다. 내려칠 수가 없었다. 돼지도 생각이 있고, 피가 흐르고, 숨을 쉰다는 그 동질감이 거부감이 되어 나를 압도했다.
도축 일정 자체를 취소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망치는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고, 돼지는 갈라진 비명을 지르다가 죽는다. 살아 있는 동안에 아무리 행복한 돼지였다고 하더라도 "천사들이 내려와" 돼지를 죽인 사람의 "죄를 사해주지"는 않는다.
(139쪽)생명을 거두는 데에는 어떤 책임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축장에 맡겨둔 우리의 책임은 어디로 가는 걸까?
저자는 책을 마치며 꼭 비건이 아니더라도 돼지와 사람을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 아무런 의심 없이 1++ 등급 한우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여기거나, 여행의 꽃은 고기라며 삼겹살과 목살을 구워 먹는, 여태까지의 몰지각했던 습관을 바꾸면 된다
(163쪽)작은 선택으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뒷다릿살을 먹는다면 돼지의 전체 사육 마릿수를 줄일 수 있다. 자연 양돈 방식으로 기른 돼지고기를 먹는다면 돼지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마블링 없는 3등급 소고기를 먹는다면 옥수수 생산을 줄일 수 있다. 옥수수가 줄면(...)아마존을 지킬 수 있다.
탈육식의 문턱 주변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그러나 비건이 되기는 두려운 이들에게 감히 조언해주고 싶다.
(186쪽)고기 이전에 돼지가 있고, 돼지는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어떤 고기를 먹을지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이면까지 알고 선택할 때에야 비로소 진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돼지의 이름을 짓지 못했다. 아무 이름이나 갖다 붙여도 이름을 부르는 순간부터는 관계가 달라질 위험이 있다. 유일의 존재가 되고 애정을 갖게 될 것 같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몇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다. - P115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내려칠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함께한 시간이 떠올랐다거나 추억 같은 상념에 젖은 건 아니었다. 내 몸의 저항을 주도하는 정체는 살아 있는 생명을 망치로 내려친다는 것, 생명을 해치는 행위에 대한 거북함이었다. 내려칠 수가 없었다. 돼지도 생각이 있고, 피가 흐르고, 숨을 쉰다는 그 동질감이 거부감이 되어 나를 압도했다. - P137
측정할 수는 없지만, 생명을 거두는 데에는 어떤 책임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축장에 맡겨둔 우리의 책임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 책임은 외면하면 그만인 책임인 걸까? 하루 평균 7만마리씩 도축되는 돼지의 넋은 누가 위로해줄까?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쪼개지고 흩어진 우리의 책임이 어디로 가는 건지 생각해본다. - P139
고기 이전에 돼지가 있고, 돼지는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어떤 고기를 먹을지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이면까지 알고 선택할 때에야 비로소 진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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