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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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라고 하면 왠지 청소년기부터 망원경을 들고 옥상에 올라 별을 바라보고, 책상 앞에 천체 사진을 덕지덕지 붙여두고, 박사님이 된 후에는 밤새 천문대에서 홀로 관측 데이터를 수집하는, 순진한 얼굴과 마르지 않는 열정을 가진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과연 2020년대 현실을 살아가는 한국의 천문학자가 모두 이런 모습일까?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읽으면 그런 고정관념이 사르르 녹을 것이다.


심채경은 천문학자이다. 그리고 동시에 워킹맘, 비정규직 생활을 오래했던 과학자, 산문집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천문학자와 '워킹맘'이라니, 생소한 단어 조합이다. '비정규직'도 과학자라는 단어 옆에서 어색하게 발음된다. '이과'답지 않게 글을 잘 써서 특이한 사람 같기도 하다.


저자는 다가가기 어려울 것만 같은 천문학자의 이미지를 부수고, 평범한 이공계열 학생이 어떻게 연구실에 들어가고, 박사 졸업 전에 대학에서 교양강의를 맡고, 연구과제를 맡기 위해 원서와 자소서를 쓰며 불안에 시달리는지에 대해 들려준다. 그리고 생활인으로서의 과학자가 다른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그 말들이 친근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좋았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이공계열 전공자 여학생들이 읽으면 가장 좋을 책일 것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과학자'라는 귀한 롤모델을 발견할 수 있다. 우주과학과에 들어가고 싶은 청소년들에게는 대학이란 무엇을 배우는 곳이며 연구실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는지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자소서를 좀 더 열심히 썼다면 작가님의 후배가 되었으려나' 하는 생각이 배경음악처럼 깔려있었다(경희대 우주과학과에 원서 넣었는데 예비 1번으로 결국 불합격😂). 지금은 이공계에서 좀 멀어졌지만 고등학생 때는 동아리에서 천체 관측도 자주 했는데... 천문 파트가 좋아서 수능 탐구과목도 지2로 선택했는데... 이런 추억을 꺼내보기도 했다. (음 이건 너무 라떼스러운가, 아무튼) 한때 우주를 꿈꾸던 소년을 아직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이 보아도 충분히 좋다🌌



+ 가장 맘에 들었던 페이지🐬🌟

언론은, 어쩌면 사람들은, 대단한 과학자를 집중 조명하고 싶어한다. 고난을 극복한 영웅담에 빨리 감탄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과학자를 여럿 키워서 그중 한 사람이라도 대단해지는 과정을 지지하거나 지켜보는 것은 별로 인기가 없는 모양이다. 세계적 과학자가 어디서 뿅 하고 갑자기 나타날 리 없는데. - P146

보이저는 창백한 푸른 점을 잠시 응시한 뒤, 다시 원래대로 기수를 돌렸다. (...)지구에서부터 가지고 간 연료는 바닥났다. 태양의 중력은 점차 가벼워지고, 그 빛조차도 너무 희미하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춥고 어둡고 광활한 우주로 묵묵히 나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 P156

과학 논문에서는 항상 저자를 ‘우리(we)‘라고 칭한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의 저자는 당사자 한 명인데, 그래도 논문을 쓰는 저자를 자칭할 때 ‘우리‘라고 하는 것이다.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달에 사람을 보낸 것도 미항공우주국의 연구원이나 미국의 납세자가 아니라, ‘우리‘ 인류인 것이다. 그토록 공들여 얻은 우주 탐사 자료를 전 인류와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은 그래서 당연하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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