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의 걸음마 -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SF소설 네 편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15
이종산 외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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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갈 잃어버린 것도, 눈치 없이 피해만 끼치는 것도, 마냥 불쌍하고 도움만 받는 것도, 모자란 것도 아닌 존재들을 그 자체로 축하하고 기뻐하기 위해

장애와 SF의 만남이 여러 작가의 손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앤솔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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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축하해!>
🔖(36-37쪽)잃어버린 기분인데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주머니를 더듬으며 길을 걷는 기분. 리라는 그 기분을 잘 알았다. 듣는 것. 아빠. 그런 것들.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으니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광장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속에 서 있으니 양쪽 주머니에 만져지는 것이 하나씩 든 것 같다. 그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리라의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리라는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그런 것들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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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걸음마>는 장애 인물 당사자의 심리를 묘사하고, 적극적인 생에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상체는 사람의 얼굴과 팔, 하체는 지느러미로 이루어진 보통의 인어들과 다르게 "괴물 같이 생긴 생선 대가리에 징그러운 다리"(65쪽)를 가진 '나'는 물속에서 헤엄쳐 이동하는 걸 훨씬 어려워 한다. 게다가 자신을 혐오 어린 시선으로 보는 인어들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꾹꾹 누르며 살아간다. 학교에서 온갖 무례하고 불편한 상황들을 겪으며 '나'는 자기 존재와 쓸모를 의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소 취미이자 특기였던 배터리 수집, 부품 조립 스킬을 발휘하여 '걸음마'(현 인류에게는 휠체어 같은 역할을 하는 기계일 것이다)를 발명해낸다. 스스로를 쓸모 없다고 여기던 '나'는 주변의 장애인어와, 다른 행성에 사는 생명체에게까지 도움을 주는 훌륭한 인어로 성장한다.

아쉬운 점: '나'가 걸음마를 발명하며 분위기가 전환되는 부분이 소설 내에서 너무 빠르게 진행되었다. 걸음마 발명 이전엔 심리 묘사가 좋은데 발명 이후엔 '나'의 업적을 늘어놓 데 관심이 쏠린 듯한 느낌이다.

좋았던 점: 1️⃣'나'가 걸음마를 장착하고 수면까지 올라가 푸른 풍경을 목격할 때의 감각적인 묘사가 마음에 든다.🌊 2️⃣한국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챌 만한 요소(세종대왕 동상)가 등장한 지점부터 나(독자)와 작품의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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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래 통신>은 초점화자가 2020년대를 살아가는 비장애인이라 앞의 소설에 비해 좀 더 친숙하고 몰입하기 쉬웠다. '강솔'은 평소 장애를 깊이 생각해보기는 커녕, 그저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시각장애인 '이원'의 파트너가 되는, 철없는 보통의 청소년(?)이다. 강솔은 무의식적으로(그리고 무비판적으로) 장애인이 단지 도움받는 존재라고만 생각했지만, 이원에게 도움 받음으로써 고정관념이 깨지고 이원과 친구가 된다. (사실은 외계인이었던)이원 역시 인간은 전부 별로라는 생각을 수정하고 강솔이 농담처럼 던진 "고래고래 통신"이라는 연구제목을 받아들인다.🐳 혐관이 풀어지는 서사는 역시 유쾌하고 따스하다.

🔖(114쪽)"내가 다시 지구로 오면 우리는 인류와 대화하지 않을 거야. 인류가 우리에게 얼마나 적대적인지 충분히 봤거든. 우리는 고래들과 대화할 거야. 고래들은 똑똑하고 상냥해. 자기를 죽이려 드는 인간을 구해주기도 하고."
🔖(132쪽)이원은 씩 웃었다. "지금까지 지구인이 한 모든 작명 중에 가장 맘에 든다. 너 통신국장 시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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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뷔>
우등과 열등, 정상과 비정상, 비장애와 장애 나누기 대신 경계 흩뜨리기, 꿈꾸듯이 기억하기, 춤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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