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없는 육식의 탄생
체이스 퍼디 지음, 윤동준 옮김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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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년차 (짭)비건이다. 밥약속을 잡을 때 비건 식당을 고려해주는 친구도 있고, 고기 대신 초밥을 먹는 건 어떻냐며 물어봐주는 친구도 있어서 잘 살아가고 있다. 채식주의자로 살면 외식하기가 불편할 거라는 통념(?)과는 다르게, 내 문제는 집 밖이 아니라 집 안에서 발생한다.
논비건 부모님과 함께 살며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네가 고기를 안 먹어서 그렇게 맥아리가 없는 거야”, “우유를 먹어야 칼슘도 섭취하고 좋지”, “그 유별난 짓 언제까지 하나 보자” 같은 말들이다. 음 근데 난 채식하기 전부터 비실비실했는데… 아무튼,
내가 채식을 시작하게 된 건, 윤리적으로 더 노력하며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업의 굴레 아래에서는 동물들이 전혀 존중받지 못하기에, 내가 육식을 중단함으로써 그(가축)들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운 생애를 보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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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로는 풀리지 않는 의구심이 있었다. 인간이 정말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며 살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었다면, 비건으로 사는 게 정말 ‘옳은’ 삶인가? 그냥 죄책감을 덜기 위한 행동에 불과하지 않은가? 가족들과 불화하면서까지 신념을 지키는 게 옳은 일인가?
이런 물음들에 『죽음 없는 육식의 탄생』은 꽤나 합리적인 답을 제시한다. 세포배양육(cell-cultured meat)을 먹는다면 ‘동물을 죽이지 않으면서도 고기를 계속 섭취하고’ 심지어 환경오염을 줄일 수도 있다.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큰 결심 없이도 동물들과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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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없는 육식의 탄생』은 조시 테트릭이 그의 회사 ‘저스트’에서 어떻게 세포배양육 사업을 시작하고 진행해왔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식물성 달걀 대체품인 저스트에그를 판매하는 그 ‘저스트’가 맞다.)
세포배양육을 만드는 데는 기본적으로 ①세포 ②배양액 ③바이오리액터가 필요하다. 실험실/공장에서 바이오리액터에 동물의 세포와 배양액을 채운 뒤, 세포가 복제되고 뭉쳐져서 일정 크기와 무게에 도달할 때까지 잘 관리해주면 세포배양육이 완성된다. 실제 동물에서 채취한 세포로 만들기 때문에 성분이 육고기와 같다. 이게 말로 써놓으니까 간단해 보이는데, 세포를 길러내기 위한 영양분이 가득한 ‘배양액’을 만들기가 어려워서 아직도 생산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그래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비용이 감소하고 세포배양육의 가격도 합리적인 수준을 찾아가고 있다. 2013년에는 500g을 생산하는 데 120만 달러나 들었지만 2020년에는 50달러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 동네 마트에서는 한우 230g을 14,000원대에 팔던데 어림잡아 500g에 25달러 정도 되는 셈이다.) 가격이 더 낮아진다면 나도 세포배양육을 사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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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쉬운 점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아직은 실제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세포배양육을 구매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세포배양육 자체를 탐탁지 않아하는 부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미국의 축산업자들이 세포배양육을 ‘고기’라고 부르기를 거부하고, 고기의 정의를 “전통적 방법으로 길러낸 동물의 살코기”로 좁혀달라며 농무부 식품안전검사국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전통적’ 목축업 시스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몇몇 주요 육류산업 단체 대표들이 세포배양육을 단지 “기득권에 대한 위협”으로만 여긴다며 지적한다. 19세기 ‘마가린’이 탄압당했던 역사를 떠올리며, 세포배양육 역시 ‘재래식으로 생산한 고기’에 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방식이 흥미롭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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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없는 육식의 탄생』은 “고기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세포배양육을 시장경제 체제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독자가 스스로 생각해보게끔 한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시민이자 소비자의 입장에서만 채식을 실천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기업(특히 스타트업)의 관점으로 채식, 육식, 세포배양육에 대해 생각해보고 시야를 넓힐 수 있어서 좋았다. 채식에 정답이 없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엇갈리는 만큼 세포배양육에 대한 반응도 다양할 텐데, 다른 독자들이 『죽음 없는 육식의 탄생』을 읽고 남긴 리뷰를 더 찾아보고 싶다.

※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판 엘런은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다. 세포배양육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낸 주된 목적은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 P32

"전 세계를 비건화하려는 실현 불가능한 시도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의 상층부에서부터 변화해나가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벤처투자가 커트 올브라이트는 말한다. - P166

미국 역사를 살펴보면 새로운 식품이 도입될 때 이런 드라마가 자주 나타난다. 그와 같은 전략을 식별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항상 기득권 집단이 공개적으로 신제품을 폄하함으로써 가치를 깎아내리면서 드라마가 시작된다(목축업자들은 세포배양육을 ‘가짜 고기’라고 부른다).
그런 다음, 경제 분야에서 입지를 확보해나가는 신제품의 기반을 흔들기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신용을 떨어뜨리고 제품의 가치를 깎아내린다. 이런 행동을 방법만 조금씩 바꿔 계속 반복한다. - P179

피터 싱어에게, 고기처럼 생명 연장에 근본적인 요소를 분자 수준에서 다시 재구성해내려는 실험실의 시도가 지나치게 위험한지 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식품을 얻는 데 그저 자연에만 의존했다면 여전히 곡물을 주우러 다니고 열심히 사냥해야 했을 겁니다. 무조건 자연 그대로가 황금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P218

우리가 처한 현실 때문에 고기를 향한 욕망을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고기를 먹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현실을 변화시킬까? 우리는 고기로부터 벗어나 지구를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아니면 같은 품질의 대체품을 성취하려는 노력을 통해 고기를 대하는 자세를 바꿀 수 있을까?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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