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이름은 영원히 모른 채 아침달 시집 18
원성은 지음 / 아침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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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이름은 영원히 모른 채』는 독자에게 활짝 열려 있지만은 않다. 일상적이고 쉬운 단어를 오밀조밀 뭉쳐서 인기를 끄는 시집과는 다르다. ‘고전주의자’, ‘낭만주의자’, ‘리얼리스트’ 등 문예이론의 말을 그대로 가져온거나(「트리플렛」), ‘로만 야콥슨’의 연구를 제목으로 차용하는(「실어증의 두 가지 유형」) 유형의 시를 읽으면, 시인이 딱히 대중의 공감과 인기를 바라며 시를 쓰지는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성은의 시는 직관적으로 단번에 이해하거나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유의 것은 아니다.

시인은 첫 장에서 “때때로 공포라는 감정은 아주 아름다운 것을 우연히 보게 해준다”라고 운을 뗀다. ‘공포’라는 감정은 『새의 이름은 영원히 모른 채』를 관통한다. 그런데 ‘공포’에 유념하며 시를 읽다 보면 절박하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을 목격한 기분이 들고, 독자는 머뭇거리게 된다. 아름답기보다는 처절하다는 첫인상을 받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시인은 “내 웃음소리도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공포라는 장르의 속성이다”(「살아 있는 조각상」)라며 이 감정을 벗어날 수 없음을 토로한다. 심지어 “내가 만드는 소리를 나도 모르는 채/입을 다물 수가 없”기 때문에(「아나크로니스트」) 자기 속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를 쏟는 데 온힘을 다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시집에서 내내 지속되어 껄끄럽기까지 하다.

시인은 왜 이렇게 어렵고 불편한 말을 반복하는 것일까? 다음 시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소설가 안톤은 오랫동안 시달리고 있다 안톤은 어느 날, 자신이 6년 동안 집필한 장편 소설이 대형서점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것을 본다… 아사 직전의 그는 텅 빈 냉장고 문을 열면서 그 소설이, 과장 없이, 그의 전부였다는 것을 간신히 기억해낸다”(「러시안 노블」 55쪽). 하루아침에 자신의 소설을 도둑맞은 “그날 이후 안톤은 더는 바덴바덴에서의 눈부신 여름을 떠올리지 않는다 더는 한겨울 시베리아의 추위에 떨면서 기분 좋은 외로움에 잠겨 있지 않는다 더는 바이칼호수를 응시하면서 아, 깨끗해 중얼거리지 않는다”(「러시안 노블」 57쪽). ‘안톤’이 시인과 동등한 존재는 아니지만, 시인이 어떤 ‘상실’ 때문에 충격을 받아 더 이상 예전의 일상이나 여유를 누릴 수 없는 상황을 겪었으리라고 추측해볼 수는 있다.

안톤의 머릿속에 “박쥐와 까마귀 수십 마리가” 살고 그 둘이 말다툼하는 것처럼 ‘도라’와 ‘클라라’도 다툰다. “도라에게는 클라라의 말끝을 따라하는 버릇이 있다…//클라라는 말한다/틀림없어 누군가 내 삶을 통째로 훔쳐갔어 그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어…/그게 누구인지를 모르겠어//도라는 말한다/클라라, 너는 완전히 미쳤어 정신 차려”(「검은 쌍둥이」 51쪽). 클라라 역시 안톤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훔쳤다고 믿는다. 클라라도 “상상한 것을 공책에 쓰느라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었는데 공책을 잃어버린 것이다. 도라는 상심한 클라라를 위해 “기억력이 나쁜 너를 위해 내가 대신 써줄게 써놓고 나서/잊을 만하면 중얼거려줄게”라고 생각하며 클라라의 말을 예상하고 미리 공책에 적는다. 그동안 클라라는 “삶을 도둑맞았다는 생각에서, 허기에서, 잠에서/…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 도라가 이런 말들을 공책에 쓰는 동안 클라라는 “사실은 깨어 있었던 적도 살아 있었던 적도 없는”(「검은 쌍둥이」 54쪽) 존재였음이 밝혀진다. 그렇다면 (비약적이긴 하지만) 도라는 한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의식이고 클라라는 잠재된 무의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을 빼앗겼다는 충격으로 인해 무의식이 깊은 잠에 빠진 절망적인 상황, 즉 실어증(「실어증의 두 가지 유형」)을 겪으면서도 시인은 의식적으로 클라라의 말끝을 따라하고 공책에 받아 적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원성은의 시 쓰기 방식이 아닐까.

여기, “부리가 길고 가느다란 희귀종의 새가, 날개가 하나뿐인데 그마저도 다친 새가/상처 부위에만 온기가 남아 있는 새가” 죽어가고 있다. 새는 시인 또는 화자를 의미하는 사물로 볼 수 있다. 시인은 상처와 공포에 질려 죽어가는 상태에 함몰되지 않고, 계속해서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여기서부터 다시 기억”하고 “여기서부터 다시 노래”하고 “여기서부터 다시 응시”하고 “여기서부터 다시 사랑”하려고 시도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여기서부터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울기 시작하는/작고 가볍고 부드러운 나의 새”를 손에 담는다(「왼손잡이가 오른손으로 쓴 악필의 편지」). 이 광경은 독자에게 묘한 위로를 준다.

다시 첫 장으로 돌아와서, 시인은 “길을 잃은 단 한 명이라도/조금 덜 무섭고 덜 아프기를 바란다/그 가능성을 믿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야 시인의 말이 이해된다. 비록 원성은의 시가 현실의 구체적인 사건에 닿아있지 않고 관념과 감정의 과잉으로 읽힐지라도… 공포에 질려있는 사람, 삶을 도둑맞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손 내미는 시인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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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5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