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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 - 아프리카 코이산족 채록 시집
코이코이족 외 지음, 이석호 옮김, W. H. 블리크 채록 / 갈라파고스 / 2021년 3월
평점 :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는 별들의 소리를 듣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11쪽)
할아버지 오두막에서 잠을 잘 때마다
난 늘 그 곁에 앉아 있곤 했지
밖은 추웠어
난 할아버지에게 묻곤 했지
내가 들은 소리의 정체에 대해
꼭 누군가 말하는 소리처럼 들렸거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지
별들이 수군대는 소리라고
별들이 ‘차우!’라고 수군대는구나
…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한단다
별들이 ‘반짝이는’ 게 아니라 ‘수군대는’ 것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소리였다. 서늘한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을 상상했다. 한여름에 시골집 마당에 앉아 별을 보는데 숨을 죽이고 눈보다 귀에 집중하는 것이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 멀리서 울려오는 개 짖는 소리, 풀벌레가 찌르르 우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 미미하지만 웅성대는 소리… (위의 시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대충 감이 오지 않는가. 「말하는 별들」은 이 느낌에 그치지 않고 산족 사냥꾼의 마음을 담아낸다. (참고로 ‘스프링복’은 일종의 영양이며 남아공을 대표하는 동물이다.)
(12쪽)
챠찌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지
내가 들은 소리는 스프링복의 눈을 저주하는 소리였다고
그래야 우리가 사냥을 잘 할 수 있다고
…
지금도 그 소리가 들려
아무 데나 앉아도
가까이 다가오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차우라고 부르는 별들의 음성과
차우! 차우!라는 메아리를
어렵지도 않고 아름다운 시이다.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는 이처럼 별, 달, 은하수, 사람에 대해 노래하는 코이코이족, 산족의 이야기(민담, 설화)를 품고 있다. 이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시는 생소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외에도 마음에 드는 표현이 많아서 인용하고 싶었는데, 분량이 너무 길어질 듯해서 8편의 시를 이미지로 대체했다.)
『별들은 여름에 수군대는 걸 좋아해』의 진면목은 63쪽부터이다. 산족의 땅에 유럽 백인들이 밀려오면서 ‘별들의 수군거림’을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사자 꿈」과 「루이터 이야기」에 실제로 백인 때문에 고통을 당한 산족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그걸 읽고도 산족을 단순히 신비하거나 미개한 원시 부족으로만 여기는 건 예의 없는 짓이다.
산족은 억압당하고 폭력에 휘둘리면서도 이야기한다.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새벽심장별’이라고 칭하며 하늘에서 별, 달과 함께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별과 함께라면 모든 집 떠나온 이들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 미미하고 작은 타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싶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공감능력의 범위를 적극적으로 넓히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25-26쪽)
우리 같은 사람들은
머리 위 저 멀리에서 하얀 빛을 쏟아붓는
부드러운 별빛의 안내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지
소녀가 은하수를 만든 건
우리에게 소박한 밤 빛을 주려 했기 때문이라지
그래서 은하수를 나무의 재보다 더 하얗게
하얗게 빛나게 만들었다지
한참 뒤 우리들이 어두운 밤에도
집을 찾아갈 수 있도록
(125쪽)
그렇게 걸어간 길의 끝엔 밥 짓는 냄새,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 폭력도 차별도 없는 완전한 사랑의 시간이 자리하고 있으리라는 믿음으로요.
할아버지 오두막에서 잠을 잘 때마다 난 늘 그 곁에 앉아 있곤 했지 밖은 추웠어 난 할아버지에게 묻곤 했지 내가 들은 소리의 정체에 대해 꼭 누군가 말하는 소리처럼 들렸거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지 별들이 수군대는 소리라고 - P11
그렇게 걸어간 길의 끝엔 밥 짓는 냄새,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 폭력도 차별도 없는 완전한 사랑의 시간이 자리하고 있으리라는 믿음으로요.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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