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 이야기를 통해 보는 장애에 대한 편견들
어맨다 레덕 지음, 김소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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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동화를 접하곤 한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특히 디즈니 공주 캐릭터에 곧잘 빠져든다.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의 저자 어맨다 레덕 역시 어린 시절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를 보고 또 봤다고 한다.

 

디즈니의 공주님들은 일반적으로 개봉 당시, 자주적이고 진보한 여성 취급을 받아왔다. 이성애 대신 자매애를 보인 엘사, 오랑캐를 물리친 뮬란, 책 읽기를 좋아하는 벨 등은 여자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안겨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물이다. 대중은 이런 디즈니 프린세스에 열광했지만, 어맨다 레덕은 사람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Q. 휠체어 탄 공주를 본 적이 있는가?



 

생뚱맞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한번 확인해보자. 이 일러스트에 그려진 안나, 엘사, 티아나, 메릴다, , 신데렐라, 오로라, 스노우 화이트, 뮬란, 모아나, 에리얼, 바넬로피, 포카혼타스, 라푼젤, 자스민그러고 보니 전부 비장애인이다(!)

 

한국 통계청 정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구는 2019년 기준 약 262만 명, 전체 인구의 5% 안팎이다. (아마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비율일 것이다.) 디즈니도 현실적으로 이 비율을 따르면 1명 정도는 장애인 공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법한데 현재로서는 아무도 없다. 대답을 조금 비약하긴 했지만 저자의 화두는 분명 곱씹어볼 만한 질문이다.

 

어맨다 레덕은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형제와 안데르센의 동화, 그리고 장애인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인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저자가 소개하는 동화는 모두 유럽의 것이라 익숙하지 않은 작품도 있었지만, 책 속에 줄거리도 포함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경우엔 그저 어릴 적에 동경했던 예쁜 공주와 행복한 결말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저자가 던진 질문과 사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장애 때문에 남들과 다른 모습을 가진 주인공은 멀쩡한모습으로 해피엔딩을 맞는 걸까? 주인공의 장애가 치유되지 않으면 좋은 결말이 아닌가?

 

예컨대 한국 동화 심청전도 심청의 아버지 심봉사가 궁중 잔치에서 눈을 뜨고 딸과 상봉한다는 해피엔딩이 존재한다. (※ 「심청전은 원래 판소리계 소설이지만, 동화로 각색된 버전에서도 심봉사가 맹인인 건 동일하므로 그냥 넘어가자)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주제인데, 시쳇말로 뚝배기가 깨지는경험이었다.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는 장애뿐만 아니라 페미니즘과 관련해서도 짚을 부분이 많았다. 다음은 내가 책에 밑줄 친 내용 중 일부이다.

 

(151)

뮬란은 자신의 다른 육체가 남자들의 육체와 마찬가지로 가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생산적이고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 이미 구축된 생각들에 자신의 몸을 맞춤으로써 승리를 얻은 것이다.

 

(196)

언어장애가 있는 인어 공주라고 해도 손짓이나 몸짓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도대체 왜 성에 있는 사람들은 작은 벙어리 업둥이에게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 줄 생각을 하지 않은 걸까?

 

(239)

이데올로기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수 세대 동안 우리가 듣고 있는 이야기들은 모든 사람이 가능한 한 비장애인이며 이상적인 사람이 되기를 요구한다.

 

(285)

또다시 우리는 사회가 변화기보다는 치료를 강조하는 문화를 지지하고 영속화했다. 장애인이 잘 살 수 있도록 사회를 바꾸기보다는 장애인의 삶 자체를 말살해버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서사가 말해지는 사회가 지속되게 했다.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들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는 동화 속에 숨어있던 장애에 대한 편견을 헤집어 보여준다.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무지를 깨달을 수 있어서 좋은 책이었다. 너무 무겁지 않게 장애학 관련 글을 접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수 세대 동안 우리가 듣고 있는 이야기들은 모든 사람이 가능한 한 비장애인이며 이상적인 사람이 되기를 요구한다. - P239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들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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