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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과 도넛 - 존경과 혐오의 공권력 미국경찰을 말하다
최성규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나는 '미국 경찰'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두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분홍색 도넛을 먹는 배불뚝이 아저씨이고, 다른 하나는 용의자를 거칠게 제압하는 장정이다.
둘 다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이미지인데, 그만큼 '미국 경찰'은 내게서 멀고 관련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총과 도넛』을 읽으면서 우리나라가 '자치 경찰'을 논의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함께 발붙이고 살아갈 한국 경찰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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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과 '도넛'은 미국 경찰의 상징이다. <심슨>에 등장하는 경찰 '클랜시 위검' 캐릭터가 도넛 먹는 경찰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겠다. 『총과 도넛』을 처음부터 흥미롭게 읽으려면 바로 88쪽을 펼치긱 권한다. 도넛, 경찰학교, 순찰차, 경찰견, 부업 등등 Part2를 통해 미국 경찰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엿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와는 너무 달라서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한국 경찰과 미국 경찰의 차이는 각자 채택하고 있는 제도가 다른 데서 기인한다. 한국은 '국가 경찰 제도', 미국은 (100%에 가까운!) 자치 경찰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 거냐면...
(49쪽)
한국의 서울강남경찰서는 서울지방경찰청의 지시감독을 받고 서울지방경찰청은 경찰청의 지시감독을 받는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시카고경찰은 시카고가 위치한 쿡카운티의 보안관이나 일리노이주의 주경찰에게 지시감독을 받지 않는다.
미국은 크고 작은 독립적인 경찰들이 평소 관할 구역을 담당하다가, 큰 일이 생기면 서로 연합하여 치안과 수사를 맡는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애초에 미국이 각 주(state)들의 연합중국이니 자치경찰이 더 잘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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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찰과 미국 경찰이 또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총'일 것이다. 미국은 수정헌법 2조에 근거하여 모든 시민이 총기소유의 자유를 가진다. 그말인즉슨, 경찰도 총을 가지고 용의자도 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미국의 치안과 경찰 공권력 문제가 아주 복잡하다.
(201쪽)
시민은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경찰에 총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항상 갖고 있고 경찰관도 자신이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시민이 품 안에 총을 숨기고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여러모로 골치아픈 형국인 게 분명하다. 여기에 인종차별과 편견이 더해지면 사태는 더욱 복잡해진다. 작년 5월 조지 플로이드라는 한 흑인 남성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숨진 것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이 책에는 더 많은 사례가 적혀 있다.
이렇게 손대기조차도 겁나는 미국경찰과 총기 문제에 대해 일반적으로 공화당은 총기 규제 반대, 민주당은 규제 찬성 입장을 내세우고, 최근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개혁'을 선언하며 규제 강화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기사 원문 링크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021511310005479 )
나는 그동안 미국 대선 소식을 찾아보며 새 대통령이 한반도의 정치외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총기규제의 관점으로 미국 정치를 바라본 건 처음이라 새로웠다. 미약하지만 미국과 정치를 보는 시야가 확장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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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총과 도넛』을 마무리하며 실제 경찰들의 일화를 들려줄 뿐, 미국 경찰과 사회문제에 대해 명료한 결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런 귀결보다는 책의 곳곳에서 한국경찰과 미국경찰의 다른점을 떠올린 것이 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있지도 않고 생소한 소재이지만, 해외뉴스를 챙겨 보며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시민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위키백과(또는 나무위키)를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독자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흔치 않은 이야기가 호기심을 채워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