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폭스 갬빗 - 나인폭스 갬빗 3부작
이윤하 지음, 조호근 옮김 / 허블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나인폭스 갬빗은 스페이스 오페라이다. 스타트랙, 스타워즈 등으로 유명한 장르인데 우리나라는 이런 하드SF보다는 생활 밀착형(?) 소프트SF가 대세인 편이다. 작가 이윤하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그의 작품들은 한국 디아스포라 문학의 광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나인폭스 갬빗은 한국 땅에서 자생한 SF는 아니지만 한국적 문화 요소가 담긴 독특한 작품으로 연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인폭스 갬빗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은 역법이다. 작중 제국은 여섯 분파가 모여서 정부를 이루는데 역법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이데올로기이자 물리 법칙으로 작용한다. 시간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따라 거의 종교적인 의미로 니편 내편을 가르고,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로 군대를 구성하면 이능력(exotic)도 발휘할 수 있다.

 

(p44) 표준 역법체계는 단순히 시간을 계측하고 표기하는 것을 넘어, 모든 역학과 사회구조까지 포괄하는 시스템이다.

 

역법은 일정하게 흐르는 시간을 측정해서 그대로 믿는 것보단 그 사회의 신념을 대변하는 위상을 차지하는 쪽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그러니까 자연적인 게 아니라 사회의 합의에 가까운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인 셈이다. 처음 접해보는 설정이라서 초반에 조금 헤맸지만,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팁을 참고해서 속도감 있게 완독할 수 있었다.

 

※ 『나인폭스 갬빗을 처음 읽는 독자를 위한 안내서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4977770&memberNo=5235722









그림 자료 출처

https://machineries-of-empire.fandom.com/wiki/Machineries_of_Empire_Wiki


다음은 대략적인 줄거리와 함께 체리스의 태도변화와 성장에 초점을 둔 리뷰이다.

 

체리스는 이었다. 켈 군인이 되려면 사관학교에서 진형 본능을 주입받는 훈련을 거쳐야 한다. 이 훈련을 견뎌낸 켈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다. 체리스 역시 켈로서 전투에 임하며 육두정부에 충성을 다하고 용맹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인다. 체리스는 수학적 능력이 뛰어나고 서비터와도 어울리는 사람이긴 하지만, 제국과 전쟁에 대해서는 개인의 주관보다 복종을 (거의 반강제)선택하는 켈이다.

 

그런 체리스가 슈오스 제다오와 대화하며 전략을 배우며 점점 생각을 확장해나간다. 통일된 역법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체리스가, 이단 한 명의 목숨과 아군의 목숨이 똑같음을 확신한다. 체리스는 새로운 제국을 꿈꾸는 제다오와 섞이면서 결국 자신이 제국에 이용당하고 배신당했음을 깨닫는다. 그 후 체리스는 전체에 복종하던 과거를 떠나 새로운 시간 체계를, 미래를 개척하리라고 다짐한다.

 

(p493) “나는 아제웬 체리스야.” 더 이상 자신을 켈이라 칭할 순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슈오스 제다오이기도 하지. 내가 누구든 간에, 아직 해야할 싸움이 남았어.”

 

(p494) 그녀는 육두정부의 표준 역법에 맞추어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른 역법에 따라 삶을 가늠할 것이다. 이제는 라할의 냉정하고 깔끔한 축제, 켈의 열병식, 비도나의 잔혹한 추도 의식으로 시간을 측정하지 않을 것이다.

 

제국이 이단이라고 칭하고 소멸시켜 버린 일곱 번째 분파, 그리고 400여 년 후 부활을 꿈꿨던 리오즈는 민주정을 채택했다. 각성하기 이전의 체리스가 이런 정부 형태를 상상할 수 없다고 독백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전체주의에 맞서는 형태로 작가가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가 아닌)민주주의를 선택해서 보여주고, 체리스의 입을 통해 반란은 언제나 계속되리라고 말한 것은 결국 우리에게 과거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중요한 것은 개개인이 외부의 목소리에 함부로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여 체리스처럼 역법 부식을,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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