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오단계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2
이루카 지음 / 허블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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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세 단편 모두 새로운 가족 형태를 주장한다. 이루카 작가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안드로이드가 스스로 어머니를 찾아나서고, "동성, 비혈연, 비혼 그리고 비성애 구성원"으로 가족을 이루는 세계를 그려냈다. 시대와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면 과연, 낡은 올가미 같은 현재의 가족 형태를 탈피할 수 있을지- 꽤나 도전적인 질문이다.


<독립의 오단계>, <새벽의 은빛 늑대>, <루나벤더의 귀가> 모두 해피엔딩을 맞는다. 새로운 가족이라는 실험적인 발상을 성공시키고 싶어하는 작가의 의도로 생각된다. 또한 작중에서 여성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이 역시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작가의 가치관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시리즈에서 「깃털」이 진라면 매운맛, 「하얀 까마귀」가 불닭볶음면이나 비빔냉면이라면 「독립의 오단계」는 안성탕면..? 혹은 참깨라면 정도일 것이다. (개인 선호에 따른 비유이니 큰 의미X 재미로 볼 것😅) 나는 「독립의 오단계」에서 세 권 중 가장 슴슴하고, 깊고, 보양이 될 듯한 맛을 느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독립의 오단계>의 법정 공방 장면이다. '가혜라'의 어그러진 욕망에 인공지능('가재민'으로부터 파생된)이 자아를 갖고 대항하는 구도가 흥미로웠고, 덕분에 '인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시리즈 1권에 수록된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와 비교하며 읽어도 좋을 듯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가가 던진 철학적/사회적 질문에 비해 소설 속 인물들의 내면심리 묘사는 덜 선명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위에서 '슴슴한 맛'이 난다고 평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도 세 편 모두 설정이 구체적이어서 재미있게 완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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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립의 오단계

(p32) 계층으로 보자면, 인간 아래 기계 인간이 있고 기계는 가장 아래, 존재했다.

(p47) 특정 성별과 인종, 이성애만을 인정하는 사회적 강요 때문에 많은 인간들은 신체에 갇혀 있었다. 그런 인간들은 본체에 국한되어 있으며, 소유주의 승인 없이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는 나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p68) 신기한 것은 어떤 소유주를 만나든, 기계들 대부분은 인간을 따라 하려고 한다는 거야. 인간이 되고 싶어하거든.

(p95)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기억들은 온전히 가재민을 추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식을 만들었다. 나는 가혜라가 그토록 원하던 성장형 인공지능이 되었다.


2️. 새벽의 은빛 늑대

(p119) 붉고 혼탁한 대기에 묻힌 주변과 달리 에어시티는 마치 동화 속 풍경처럼 맑은 수정구슬의 보호를 받는 듯했다.

(p130) 은빛 늑대에는 자매님들만 있어. 세상 안전하고 따뜻하고 그리고 든든해.

(p136-137) 정해민은 두 언니들을 만나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서로의 의지처가 되어 연대하면서 각자의 현실에서 탈출했던 힘. 폭력과 겁박으로 유지되었던 결혼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손을 맞잡고 서로의 탈출을 도왔던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에 3인방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3️. 루나벤더의 귀가

(p175) 혈연과 이성 간 혼인 중심의 가족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원하는 이와 가족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p196-197) 평소 텍스트로만 소통하거나 사람을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백진주를 처음에 고유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백진주와 갈등을 보이던 고유리에게 문보라는 백진주에게 스펙트럼 증후군이 있음을 알렸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대해주는 문보라에게 백진주는 평생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인정과 자유를 만날 수 있었다.

(p210) 루나벤더는 헤븐나이츠 아이템들로 둘러싸인 작은 동굴 입구를 발견했다. (...)입구에 있는 발바닥 모양의 판자를 보고 루나벤더는 미소 지었다. (...)블랙펄은 빼꼼히 루나벤더를 쳐다보더니 이내 배시시 웃었다.



특정 성별과 인종, 이성애만을 인정하는 사회적 강요 때문에 많은 인간들은 신체에 갇혀 있었다. 그런 인간들은 본체에 국한되어 있으며, 소유주의 승인 없이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는 나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 P47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기억들은 온전히 가재민을 추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식을 만들었다. 나는 가혜라가 그토록 원하던 성장형 인공지능이 되었다. - P95

은빛 늑대에는 자매님들만 있어. 세상 안전하고 따뜻하고 그리고 든든해.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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