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얀 까마귀 ㅣ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3
박지안 지음 / 허블 / 2020년 7월
평점 :
한줄평 : 어린 자아의 번복
주안점 : 시각적 묘사, 하이틴감성
여름밤 납량특집 으로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읽기 좋은 소설!
<하얀 까마귀>의 주인공 '주노'는 고2 때 친구 '아영'의 자살을 겪고, 그 충격으로 인해 학교도 자퇴하고 폐인처럼 살았다. 주노는 후에 인터넷 방송을 통해 자신의 상처와 삶을 공유하며 유명세를 얻고 극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 조작 논란에 휩싸인다. 악플과 욕설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주노는 논란을 잠재우고자 IOM2라는 신작 게임 스트리밍 방송에 출연한다.
IOM2는 "유저의 심층 심리를 파고들어 공포의 근원을 건드리는 사이코호러 게임"이다. 플레이어별로 쌓아온 기억이 다르므로 좋게 말하자면 커스터마이징, 까놓고 말하자면 개인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VR게임인 셈이다. IOM2를 실행하자 주노는 가장 잊고 싶어했던 고등학교 1,2학년 시절을 배경으로 한 가상현실을 보게 된다.
-
박지안 작가가 만화를 전공한 이력 때문인지, <하얀 까마귀>에는 세세한 시각적 묘사가 많은 편이다. 덕분에 주노의 외모라든가, 게임 플레이 화면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서 소설에 몰입할 수 있었다.
-
'하얀 까마귀'라는 소재는 그리스 신화에서 빌려왔다. 까마귀는 원래 흰 깃털을 가진 새였는데, 신에게 거짓을 고한 죄로 인해 타죽어서 검은색으로 변했다는 게 대략적인 내용이다. 까마귀는 주노의 객관적상관물(?)이다. 까마귀는 인생을 늘 거짓말로 분장하면서 살아온 주노의 처지를 대변하며 소설의 결말을 암시한다.
🔖(p53) 까마귀는 대체 왜 신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미움받고 싶지 않았던 거야. 아폴론 신에게. 하지만 그 결과는 아무 죄 없는 사람의 죽음으로 끝났지.

주노는 끝까지 진실을 마주하지 않고 자신마저 속이려 한다. 그리고 결국 혼수상태와 게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에서 주노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일삼고 반성하지 않는, 성숙하지 못한 자아의 소유자이다. 이 비극적인 결말에서 꽤나 고전적인 교훈을 찾을 수도 있겠다. 거짓말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도 그 거짓말에 세뇌되고 괴물이 되어 버린다.
-
이야기의 흐름이나 메시지와는 별개로 소재가 흥미로웠다. 게임 스트리밍 방송을 하는 BJ가 구설수에 오르고, 해명하고, 몰락하는 에피소드는 현실에서 흔하다. 밀레니얼 세대인 작가는 이런 현실을 SF 세계로 옮기면서 비현실(꿈, 혼수상태)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각을 보여준다. 그리고 10대 소녀 특유의 예민한 감성과 외모지상주의 또한 잘 포착해냈다.
개인적으로 '그녀'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해서 읽는 데 약간 걸리적 거리긴 했다. 그보다는 '주노는 ~했다'라고 서술한 문장이 좀 더 읽기 편했는데, 문체를 크게 상관하지 않는 독자라면 완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소재가 살짝 흔한 느낌은 없잖지만 학교폭력을 대하는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의 태도를 깊이 생각해볼만하며, 장면을 상상하며 몰입하는 재미가 있어서 5점 만점에 3.5점을 주는 것으로 리뷰를 마무리하겠다.
까마귀는 대체 왜 신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미움받고 싶지 않았던 거야. 아폴론 신에게. 하지만 그 결과는 아무 죄 없는 사람의 죽음으로 끝났지. - P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