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의 전장에서 - 최초의 항생제, 설파제는 어떻게 만들어져 인류를 구했나
토머스 헤이거 지음, 노승영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한줄평: (💊💊💊💊4.0) 화려한 설파제가 20세기를 감싸네..☆

먼저 '설파제' 와 '항생제'라는 용어 정의부터 짚고 넘어가겠다.

🔖(p17) 이 책에서는 설파제를 '술파닐아미드라는 비교적 단순한 원자 집합으로 그 활성을 추적해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약물'을 총칭하여 일컫는다.

🔖(p18) 항생제는 인체에 심한 피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인체 내의 특정 세균들을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는 모든 성분으로 정의된다. (...)설파제는 세계 최초의 항생제다.

「감염의 전장에서」는 1차세계대전 이후 의약 연구에 일생을 바쳤던 독일 의사 게르하르트 도마크와 설파제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큰 흐름은 도마크를 따르고 영국의 레넌드 콜브룩, 프랑스의 에르네스트 프루노와 얽히며 미국 FDA와도 설키는 블록버스터급 이야기다.

도마크는 1차세계대전 당시 동부전선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하다가 감염병으로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며 인생의 갈피를 잡는다.

🔖(p38) 상처 자체는 전쟁의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이은 감염은 틀림없이 과학으로 예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이 파멸적인 광기에 맞서리라고 신과 나 자신에게 맹세했다.

이후 도마크는 독일 사기업 '바이엘'에서 연구실을 꾸려 클라러, 미치와 함께 '프론토질'이라는 설파제를 만들어내고 특허를 출원했다. 설파제는 수많은 연쇄구균 감염증, 산욕열, 폐렴, 임질, 수막염 환자들을 "무덤으로부터 낚아챘다". 다만 설파제가 '왜' 그런 효과를 발휘하는지는 아무도 몰랐고 이 유용한 화학물질은 적정용량도 공시되지 않은 채 입소문을 타고 확산되었다.

(후에 항대사물질 역할을 함으로써 표적 미생물이 굶어 죽는다는 메커니즘이 밝혀짐. 자일리톨을 먹고 충치를 예방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

설파제(술파닐아미드)의 핵심은 '황(sulfur)'인데, 도마크가 속한 연구소의 수장 회를라인이 황 함유 아조 염료가 약효를 낼지도 모른다는 아이디어를 낸 데서 시작했다.

🔖(p206) 클라러와 도마크가 지침으로 삼은 원리는 가운데의 틀, 즉 아조 염료의 주사슬이야말로 약제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한 핵심이라는 것이었다. 곁사슬, 즉 황 같은 부착물은 이 동력 중심부를 켜는 열쇠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효과는 아조 염료가 아니라 황이 일구는 것이었다. 프루노가 몸담은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이를 발견해내며 설파제 발견과 제약 권리에 대해 독일과 대립하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설파제가 인기를 얻게 되자 갈등은 심화되었다.

2차세계대전에서는 설파제가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군인은 일반인보다 잘 통제되고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수집/분석할 수 있어서 대규모 인체실험을 시행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p393) 1차세계대전에서는 독감, 폐렴, 기관지염을 비롯한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미군 병사 5만명 가까이가 사망했으나, 2차세계대전에서는 참전 군인 수가 두 배로 늘었는데도 1265명만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의 공식 전쟁 기록에 따르면 두 전쟁의 주된 차이는 설파제의 폭넓은 이용이었다.

이렇듯 설파제는 자우버쿠겔(마법 탄환) 또는 파나케이아(그리스신화 치료의 여신)로 취급받았으나 완벽한 만병통치약은 아니었다. 오용/남용 사고가 발생했다. (3부에서 자세히 다룸) 그럼에도 설파제는 20세기 사람들에게 지대한 유익을 미친 약물로 평가받는다. 의약품 연구방식, 의사에 대한 인식, 국가가 질병통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설파제는 짧은 호시절을 누리고 #페니실린 에 자리를 물려주었지만 인류의 역사의 특이점이라고 여길만 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도마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새로이 알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의 고뇌와 갈등에 공감하며 느리고 꾸준하고 방대한 의약 연구, 나치에 동조하지 않은 독일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불안하고 폭력적인 시대 속에서 윤리를 지키려고 했던 도마크는 존경받을만 하다.

나머지 하나는 문장과 단어의 난도가 어려운 데다가 생소한 지명, 0에 수렴하는 세계사 지식 때문에 페이지를 빠르게 넘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책의 앞부분에 1차/2차세계대전 당시 전선이 표시된 지도가 삽입된다면 이해하기 좀 더 수월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나처럼 꼼꼼히 독서하고자 하는 독자들은 예습/복습용으로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을 읽으면 좋을듯하다.



1차세계대전에서는 독감, 폐렴, 기관지염을 비롯한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미군 병사 5만명 가까이가 사망했으나, 2차세계대전에서는 참전 군인 수가 두 배로 늘었는데도 1265명만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의 공식 전쟁 기록에 따르면 두 전쟁의 주된 차이는 설파제의 폭넓은 이용이었다. - P3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