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꺼내보겠다. 나는 (초보)페미니스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드러내기가 껄끄러운 게 사실이지만 어차피 영영 숨기고 살 생각은 없으니 이참에 말해본다.
이 책은 나처럼 페미니즘에 대해 들어는 보았으나, 관련 서적을 읽거나 시위에 참여하는 등의 공부를 해본 적은 없는 사람들에게 유익할듯하다. 페미니즘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현대 한국사회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흐름을 잘 짚어냈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계기는 모두 같다. 가장 근복적인 계기는 성(sex)차별을 인식하는 것이다. 나는 가부장제 하에서 자랐다. 해마다 명절이면 친할머니와 엄마와 숙모들과 내가 궂은 일을 맡았고, 친할아버지와 아빠와 삼촌들, 그리고 남동생은 소파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TV를 보거나 정치 이야기를 했다. 아주 흔한 사례이다. 너무 흔해서 이를 차별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런 성차별은 대개 여성혐오의 길로 빠진다.
내가 처음으로 피부에 와닿게 느꼈던 '여성혐오'는 나와 가장 가까운 여성에 의한 것이었다. 십대 중반까지는 그런 개념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머리를 짧게 자르자 달라지는 시선이 느껴졌다. 중학교 내내 교칙을 준수하며 지루핰 단발만 유지했던 터라 고등학생이 되는 기념으로 숏컷을 시도해보았다. 별다른 함의 없이 그냥 자른건데 놀랍게도 엄마가 화를 냈다. 왜 남자같이 보이려고 하느냐는 것이 논지였고 한술 더떠서 "네가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을까봐 걱정된다"는 소리까지 분을 내며 하셨다(7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은 이야기를 시전하신다). 사례가 어이 없게 들리는가? 축하한다! 당신은 내가 지향하는 페미니즘에 한 발 가까워졌다.
성인이 되고서는 가족뿐만 아니라 학교와 사회에서도 혐오 어린 시선을 종종 받았다. 20살 무렵 "술자리에 여자가 있어야 분위기가 칙칙하지 않지!"라는 🐶소리를 들었다. 기분이 매우 나빴지만 정확히 반박할 근거를 찾지 못했고, 내 나이의 두배나 되는 사람과 싸우면 질 게 뻔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나중에야 그것 또한 흔해빠진 여성혐오적 발언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성차별과 여성혐오가 아직도 팽배하다. 내 어조가 분노하는 것처럼 들린다면 당신이 정확히 본 거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첫걸음은 성차별을 인식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가 막연한 남성혐오로 이어지지 않고 제도와 인식의 변혁을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남자와 여자, 그 밖의 사람들은 페미니스트가 된다.
페미니즘은 '억압받았던 여성'을 남성과 평등한 위치로 만들기 위해 출발했지만, 현대 페미니즘의 지향점은 단지 여성의 권리신장을 위한 것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요지이다. 즉, 우리는 차별과 혐오를 하나씩 줄여나가는 세상을 만드는 '인간됨'을 추구해야한다. 교차성(intersectionality)를 기억하며 젠더 정의(justice)뿐만 아니라 계층, 인종, 성적지향, 장애 등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정의를 실현해야할 것이다.
⚘평등사회를 향한 페미니즘의 다섯 가지 과제
1. 침묵하지 말고 문제제기를 하자
2. 혐오와 차별의 문제는 피해 당사자만이 아닌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하자
3. 다양한 양태의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는 운동에 연대하자
4. 나 자신의 인식론적 사각지대를 보는 성찰적 용기를 키우자
5. 혐오를 조장하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들에 '페미니스트 보이콧'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