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창비시선 439
이영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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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의 시어는 추상적이다. 반복적이고, 힘이 빠진 느낌도 든다. 그러나 근본 없는 단어의 나열은 아니다. <외곬>처럼 아주 구체적인 상황묘사가 담긴 시도 있고 <주방장은 쓴다>, <임상연구센터>처럼 화자의 시선이 명확한 시도 있다. 시의 흐름을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곳곳에서 '모나미 볼펜'이나 '노란 리본'이라든가 '죠스바'와 같은 낱말이 눈에 띄어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
서늘하지만 시리도록 차갑지는 않고 노을이 다 저물어갈 때의 따스함이 담긴 시를 천천히 눈에 담을 수 있다. 고요함이 그리울 때 다시 펼쳐보면 좋을듯하다.

야금야금 아껴 읽으며 마음에 들었던 부분에는 밑줄을 치고 일기장에도 옮겨적으며 곱씹어보았다.

p25~27 <낭만의 우아하고 폭력적은 습성에 관하여>
...들개들이 쓰는 일본어를 들었는데 아름답습니다 아름답다라는 중국어를 엿들었는데 아름다워지고 맙니다 인류는 관계로 낄낄대고요 안전한 낭만에 갇힌
봄입니다
...이곳의 들개들은 휘파람입니다 남해의 습하고 더운 바람으로 기쁨이 식어도 기쁨이 식지 않는
봄입니다 노을이 없고 밤이 없고 바닥이 없어 어둠에 둥둥 뜬 지붕이 홀로 봄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p135~137 <모를>
...모를, 곳이다 익숙한 꽃나무와 내가 심지 않은 꽃나무들이 개천가에 늘어서 있다 오늘은 우산을 갖지 못한 사람이 많아 적은 비가 내린다 일정한 모양의 조약돌을 조약돌에 던지는 여태 소년의 흰 뺨을 몰래 읽는다 빛이, 있다

p148~149 <마당을 쓴다>
...마당에 조용한 능선을 그려넣으면
다음 고양이가 몸을 켠다

나는 마루 위에 사는 귀와 함께
마당 한편의 숲을
숲으로 듣는다

p162~163 <편집자의 시끄럽고 조용한 정원>
...사과합니다, 굉장하고 쓸쓸한 나의 편협이 굉장하고 쓸쓸한 너의 편협을 다정히 사랑해서

p172.<노루잠>
돌과 온도가 같은 사람 새가 지저귀는 사람 빛이 부서지는 사람 시냇물이 흐르는 사람 산이 완만해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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