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수수께끼 - 개정판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1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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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수수께끼'는 '외견상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설명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생활양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비합리적이라는 것은 현대의 보편적인 문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다른 문화를 관찰할 때 얻는 인상이다. 이런 수수께끼들은 그 원인을 밝힐 수 없다고 오랜 시간 단념되어왔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이 되는대로 산다거나 변덕스럽지 않다는 가정'을 하면 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인도, 뉴기니, 팔레스타인 등지로 우리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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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장의 주제들은 독자적인 배경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이들을 긴밀하게 엮어서 보여준다. 흐름을 깨는 것은 아쉽지만 나는 이 중에서 원시전쟁, 여성차별, 신앙, 전투적 메시아니즘 부분을 골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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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전쟁 #여성차별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혹자는 인간의 선천적인 살해본능, 혹자는 집단 간 경쟁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마빈 해리스는 이런 관점을 넘어 가장 원초적인 전쟁은 생태학적 균형에 따라 인구수를 유지시키기 위해 발동되는 메커니즘 중 하나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전쟁은 실제로 사상자를 만들어내고 인구증가를 규제하는 효과가 있다. 전쟁의 필요성 때문에 원시사회는 군인이 될 수 있는 남성의 수를 극대화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여성의 양육은 제한한다. 자연적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성비는 비슷하지만 여아 살해 관습이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뿌리깊은 여성차별이 드러난다.
사실 임신과 관련된 성적 특징들을 제외하면, 성에 따라 사회적 역할이 부여되는 것은 생물학적 차이에서 자동적으로 비롯된다고 보기 어렵다. 많은 원시부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식량생산에 더 많은 기여를 하는 것은 여성이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평균적으로 덩치가 클 뿐, 그것만으로는 남성지배적 사회가 형성된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양성 가운데 어느 성이 방어기술과 공격기술을 장악하고 있는지에 따라 지배관계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즉 전쟁에서 실제로 무기를 들고 나가 싸우는 쪽이 이 관계에서 유리하고 대부분의 경우 남성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오늘날에도) 여성은 성적으로 착취되는 경우가 많다... 전쟁과 여성차별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원인은 명확하지만 아직까지도 뚜렷한 해결방법이 없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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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기독교 #전투적메시아니즘
7장과 8장에 걸쳐 기독교가 등장한다. 성경과 기독교 관련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메시아숭배'라는 키워드로 로마의 압제 하에 있던 유대민족의 저항의 역사와 예수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는 교회를 어릴 때부터 다니며 성경을 읽었고, 텍스트를 분석적으로 이해하기 전에 이미 서사를 익힌 축에 속한다. 그래서 신적인 예수가 아니라, 역사의 큰 흐름 한 가운데 서 있었던 인간 예수를 분석한 본문을 새롭고 흥미롭게 읽었다.
예수의 공생애동안 사복음서에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은 유대인들의 분위기가 있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지배에서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savior)를 기다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유대의 독립을 위해 '정치적인' 자칭 메시아로 나타났다. 그러나 예수는 이들과는 다르게 유대인들의 '전투적 메시아니즘'이라는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유월절 전날 입성한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은 호산나(지금 구원하소서)를 외쳤지만 예수는 그 다음날 체포되어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무력으로 로마를 무너뜨릴 메시아를 기대했던 유대인들은 자연히 예수에게 실망하여 돌아섰다. 성경만 읽었을 때는 사람들이 하루만에 등을 돌린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배경을 알고 나니 (예수가 보기에는 어리석고 불쌍한) 유대인들이 인간적으로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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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세상에 기이한 문화는 많지만 분석하여 이해하지 못할 생활양식은 없다. 이를 단순히 흥미로워하는 단계에서 끝낼지, 아니면 불평등과 차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더 깊이 알아갈지는 독자 개개인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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