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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161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 한길사 / 2019년 5월
평점 :
한나 아렌트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후손들에게>에서 '어두운 시대'라는 표현을 빌려왔다. 아렌트는 시적 은유로 '어두운 시대'를 사용한다.
텅 빔, 어둠, 붕괴된 기둥은 어두운 시대를 이미지로 드러내는 은유다(p39).
아렌트의 사유에서 '어두운 시대'는 단순히 부정적인 의미만 가지지는 않는다.
어두움은 밝음과 대조되는 표현으로, 숨김과 드러남,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각각 이해될 수 있다. 이때 밝음과 어둠이라는 용어는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된다(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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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는 실제로 소름 끼칠 정도로 신기한 20세기의 극악무도한 행위 그 자체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두운 시대는 새로운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역사상 드문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가장 어두운 시대에도 밝은 빛을 기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여러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과 저작을 통해 거의 모든 상황에서도 밝은 빛을 밝히고, 지구상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수명을 넘어 밝은 빛을 제시할 수 있다(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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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는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에서 어두운 시대를 밝힌 14명의 인물들을 소개한다.
#레싱 #로자룩셈부르크 #안젤로주세페론칼리 #카를야스퍼스 #이자크디네센 #헤르만브로흐 #발터베냐민 #베르톨트브레히트 #발데마르구리안 #랜달자렐 #마르틴하이데거 #로베르트길벗 #나탈리샤로트 #위스턴휴오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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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 나는 카를 야스퍼스에 대해 리뷰해보겠다. 야스퍼스는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을 들어 어느 누구도 자기 나라의 시민이면서 세계시민이 될 수 없다(p173)고 말한다.
야스퍼스는 인류의 유대를 강조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연합한 정치구조와 상호 이해를 세계정부의 기초로 삼았다(p55).
그의 철학에 따르면 인류의 통합과 유대는 하나의 종교, 철학, 또는 한 정부형태에 대한 보편적 동의에 있는 게 아니라 복수성이 다양성에 의해 동시에 은폐되면서도 노출되는 유일성을 지향한다는 신념 속에 존재한다(p184).
야스퍼스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세계통합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오늘날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통의 사실적 현재(p176)를 공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적, 군사적 공포 또한 포함된다.
세계의 통합에 기여해왔던 과학기술은 쉽사리 세계의 통합을 파괴할 수 있으며, 전세계적 통신수단은 동시에 전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설계되었다. 한 나라가 몇몇 사람들의 정치적 지혜로 발사한 핵무기가 결국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 생명을 절멸시킬 수 있는 만일의 가능성이 현재의 인류를 통합시키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는 점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인류의 연대는 매우 소극적이다. ...인류의 연대는 정치적 책임을 동반할 경우에만 그 적극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인류의 연대는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일 수 있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런 부담에 대한 공통된 반발은 정치적 무감각과 고립주의적 민족주의, 즉 인간주의의 회적에 대한 열정이나 욕구라기보다 현존하는 모든 권력에 대한 필사적인 저항이다(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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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의 소개를 통해 어두운 시대 가운데서도 적극적으로 사유하며 살아갔던 삶을 엿보고 감명받았다. 한국 현대사에서 어두운 시대는 너무나 길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아렌트의 정치적 이야기하기를 통해 한국의 어두운 시대를 천착할 수 있을 것(p58)이라는 역자의 말처럼, 세계사와 한국사에서 권력에 저항하며 살아갔던 인물들을 발굴해내어 기억하고 적극적으로 시대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단어의 나열이 다소 어렵기는 했지만 역사와 정치에 무지했던 날들을 돌아볼 수 있어서 유익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