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을 손으로 옮겨 적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만나게 될까?책을 읽다가 마음에 남는 문장을 발견하면 밑줄을 긋거나 사진으로 남겨두곤 한다. 하지만 표시해 둔 문장을 다시 꺼내 읽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반면 필사는 문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한 글자씩 천천히 옮겨 적는 동안 단어의 의미를 되짚게 되고, 문장 속에 담긴 감정과 작가의 시선까지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토지 필사 노트』는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대하소설 토지의 공식 필사집이다. '어른의 어휘력'과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를 쓴 유선경 작가가 토지 20권을 세차례 정독한 뒤, 작품의 정수를 보여주는 147개의 문장을 골라 한 권에 담았다. '토지'는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지만 총 2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때문에 쉽게 시작하기 어려운 소설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첫 장 앞에서 망설이거나, 읽기 시작한 뒤에도 수많은 인물과 긴 서사를 따라가다 멈추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런 독자에게 토지의 거대한 세계로 들어가는 작지만 단단한 입구가 되어준다. 필사는 빠르게 읽어내는 독서와는 다르다. 한 페이지를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손이 쉽게 피로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느림 덕분에 문장을 더 깊이 읽게 된다. 박경리 문장 특유의 말맛과 리듬을 느낄 수 있고, 평소 자주 사용하지 않던 어휘와 표현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문장력을 기르는 연습이 되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자신을 돌아보는 조용한 시간이 되어준다. '토지 필사 노트' 한 권으로 토지 20권의 서사와 수많은 인물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은 '토지'를 어렵고 방대한 고전으로만 바라보던 독자에게 작품의 문장을 먼저 경험하게 한다. 필사하다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을 만난다면, 그 문장이 등장하는 원작의 장면까지 찾아 읽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거대한 작품을 반드시 완독해야 한다는 부담은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하루 한 장씩 147개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박경리가 바라본 인간과 삶, 역사와 세상의 이치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써 내려갈때 쯤에는 한 권의 필사 노트 안에 박경리의 문장뿐 아니라 그 문장을 읽었던 나의 시간과 생각도 함께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https://m.blog.naver.com/doong2mom2_/2243771305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