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강아지가 나온다고 해서 읽은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작가의 장편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특유의 가벼운 유머가득한 문장들이 적응 안되어 불편하고 별로였는데, 읽다보니 이시봉과 주인공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조마조마하는 바람에 그 문장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일단 강아지 나오는 소설이라 뭘 어째도 합격이긴했어..."사랑은 예측 불가능한 일을 겪는 거야."아빠는 무덤덤하게 말했다."강아지를 사랑하는 건 더 그래." (p.123)두꺼워서 언제 다 읽나, 했는데 이제 읽을 이시봉이 없다. 좀만 천천히 읽을걸.. 이제 읽을 이시봉이 없다니!
몇 달 전 문동북클럽 티저북으로 보고 오래 기다린 “쿠로와 함께한 여름”. 오래 기다렸고, 만화책이라 단숨에 읽겠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어렵고 재미없어서 그런거 아님) 나이가 많아 치료를 고민하는 순간, 현실적인 병원비용 문제, 돌봄노동이 쌓여 울컥 터진 짜증과 그 후에 오는 자책, 미리 알아봐둔 반려동물장례업체 등등. 마주친 장면마다 내 강아지 동생과의 비슷한 일이 겹쳐 보이고, 울컥해서 천천히 읽을 수 밖에 없었다.읽는내내 '아, 이건 찐이다. 쿠로와의 일상을 미화하지 않고 진심으로 담아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미화를 하지 않았음에도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나는 만화. 쿠로는 좋겠다! 언니가(언니 아니라고 했음) 예쁜 만화로 남겨줘서!
이제는 누군가 내게 "종교가 뭐예요?"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한다. "고통 속에 있는 생명에게 손 내미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p.28)읽는내내 눈물이 났다. 김나미 선생님이 이 개들을 구조한 시간이 짐작이 안 가서, 이 시간동안 정말 많은 개들이 고통받고 있다가 끝끝내 행복해져서. 동물권의 구조적 상황을 기록한 책만 자주보다가 구조자 개인의 에세이는 오랜만이다. 동물을 구하는 개인의 에세이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이런 글 너무 소중해😭우리가 단 10퍼 센트만 그들에게 배우려 노력해도 이 세상은 훨씬 즐거운 지상 낙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21)
"구보승은 화색을 띤 채 말을 이었다. 빛이 공간의 형태를 드러내 조사자에게 두려움을 심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무력감을 안길 거라고.희망이 인간을 구원하기도, 잠식시키기도 한다는 걸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거죠?"오랜만에 나를 잡아 세우는 소설을 읽었다. 사실 계간지로 작가님의 글을 늘 따라 읽느라, 묶인 일곱 편 중 절반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하나의 집으로 묶여서 다시 읽으니 더 재미있고 짜릿하고 소름끼친다(positive) . 첫 번째 소설집이 나와 타인의 세대/상황/성향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임(혹은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의 이해)을 보여준다면, 두 번째 소설집인 혼모노는 완벽한 오해(몰이해?)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좋아요, 원래 이런 것이 맛도리 아니겠어요..특히 혼모노! 소설보다로 처음 보고, 작년 젊은작가상으로 또 보고, 이번에 단편집의 표제작으로 또또 봤는데, 세 번째 읽어도 재밌다 어떻게 묶일까 궁금했는데, 한데 모여서 완전 멋들어지게 묶였어.. 성해나 작가님 안 사랑하는 법 몰라😻
오시로 고가니의 단편들이 좋았던 이유는 내가 깨닫고 싶었거나, 심연으로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겁나서 인정하기 싫었던 것들, 누가 나한테 직접적으로 얘기해줬으면 싶었던 것을 주인공들의 말풍선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오시로 고가니가 만든 주인공들한테 맛난거 많이 먹이고, 푸데푸데 잘 자라고 전기장판 틀어주고 싶었다..일상만화 좋아하는 분들도 좋아할 것 같고, 임선우 작가랑 이유리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한국문학러들한테 완전 추천! 장르가 달라도 익숙할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