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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심장 가까이 ㅣ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평점 :
주로 우리가 아는 상식이나 정의, 단어의 뜻 바깥에 있는 마음들을 탐구하는 을유문화사의 문고 시리즈, 암실문고.
그 두번째 작품인 <야생의 심장 가까이>는 암실문고의 정체성 그 자체인 것 같다. 이야기 형식이나 주요 등장인물들 캐릭터가 내 상식의 바깥에 존재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먼저 작가 소개를 하자면, 1920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지만 러시아 내전을 피해 브라질로 이주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를 읽고 작가를 꿈꾸기 시작했단다. 이 작품은 그녀의 첫 장편소설로 1943년 인세 대신 책 100부를 받는 조건으로 출간했는데 프란츠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뿐 아니라 리스펙토르에게 작가의 꿈을 안겨준 헤르만 헤세의 흔적까지 담겨 있어 브라질 문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고.
잘은 모르겠지만 헤세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 이런 것이었을까?
📚"살아 있는 작은 알, 주아나는 어떻게 될까?"-p.20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 쓴 것으로 유명한 '의식의 흐름 기법'은 첫장, 첫줄부터 느껴졌다. 첫줄부터 그렇단 건 문학기법은 1도 모르는 내가 느낀 바지, 팩트 여부는 모르겠다.
📚"아버지의 타자기 소리가 탁-탁......탁-탁-탁.....이어졌다. 시계가 먼지 없는 뎅-그랑 소리로 개어났다. 정적이 잠잠잠잠잠잠 이어졌다. 옷장은 뭐라고 말했지?옷-옷-옷. 아니, 아니야. 시계와 타자기와 정적 사이에는 귀가 하나 있다. 듣는, 커다란, 분홍빛, 죽은 귀."-p.12
찾아보니 의식의 흐름은 모더니즘 소설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로 등장인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기억, 마음에 스치는 느낌을 그대로 적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팩트인지도.
신기한 건 리스펙토르는 의식의 흐름을 활용한 서술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버지니아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단 것이다.
브라질 평단은 그런 리스펙토르의 천재성에 놀랐다는데 솔직히 난 불호다. 등장인물들의 의식을 따라가는 데 전혀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감하기 어려운 주인공 때문인지, 특정 문학 기법 때문인지는 해당 기법을 사용한 작품을 더 읽어보고 판단해야할 것 같다. <자기만의 방>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꼭 읽어야 할 이유가 이렇게 또 생겨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계속해서 기다리기만 하면, 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후의 시간 한 줌 속에 있게 되는거야, 알겠어? -p.13
📚악은 나의 소명이라는 확신, 주아나는 생각했다.(중략) 그녀는 모순들과 이기심과 활기로 넘실대는, 자기 안의 완전한 짐승을 느꼈다 -p.21
📚행복해지면 어떻게 되나요? 그다음엔 뭐가 오나요? -p.40
📚동물의 삶은 결국 이 쾌락의 추구로 귀결된단다. 인간의 삶은 그보다 복잡해. 쾌락의 추구와 그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둘 사이의 시간을 잠식한 불만족으로 귀결되지. 내가 좀 지나치게 단순화시켜서 말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상관없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니? 모든 갈망은 쾌락의 추구야. 모든 참회, 연민, 자비는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고. 모든 절망과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은 불만족이지. -p.78
📚특정한 대상들을 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눈이 멀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것은 예술가의 특징일 수도 있다. 그 누구라도, 진실이 이끄는 바에 따라 안전하게 추론함으써 자기 자신을 넘어선 것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특정한 대상들은 불을 밝힌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어둠 속에서 인광을 발한다. -p.186
📚음악은 연주되지 않을 때 어디로 갈까?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무방비한 상태로 대답했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내 신경으로 하프를 만들기를.-p.271
#도서제공 #을유문화사